홈 > 디렉토리 분류

달성(達城) 도동서원(道東書院) 소장 『각처통문등초(各處通文謄草)』 제1(第一) 수록 1917년 「호계서당래문(虎溪書堂來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10+KSM-XF.1917.2771-20180630.Y1850302061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사회-조직/운영-통문
작성주체 도동서원, 호계서당, 도동서원
작성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작성시기 1917
형태사항 크기: 29.5 X 20.5
수량: 03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대구 도동서원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현소장처: 대구 도동서원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관련자료

안내정보

달성(達城) 도동서원(道東書院) 소장 『각처통문등초(各處通文謄草)』 제1(第一) 수록 1917년 「호계서당래문(虎溪書堂來文)」
1917경상북도(慶尙北道) 안동군(安東郡) 호계서당(虎溪書堂) 유림이 경상북도 달성군(達城郡)도동서원(道東書院) 유림에게 보낸 통문이다. 이 통문은 도동서원에서 엮은 『각처통문등초(各處通文謄草)』 제1(第一)에 「호계서당래문(虎溪書堂來文)」이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통문에서 호계서당 측은 이상정(李象靖)[1710~1781]을 제향(祭享)한 고산서원(高山書院) 복설(復設)을 위해, 오는 3월 17일 안동군구미(龜尾) 장터에서 도회(道會)가 개최됨을 통보해 놓았다. 고산서원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광음리에 위치한 서원으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되었다가, 이때의 도회를 거쳐 1917년에 복설되었다.
『道東書院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편, 영남대학교 출판부, 1997
『朝鮮後期 書院硏究』, 이수환, 일조각, 2001
1차 작성자 : 이광우

상세정보

1917慶尙北道 安東郡虎溪書堂 유림이 高山書院 復設 관련 道會 개최 장소와 일자를 통보하기 위하여 경상북도 達城郡道東書院 유림에게 보낸 통문
各處通文謄草 第一
자료의 내용
1917慶尙北道 安東郡虎溪書堂 유림 柳淵博·金翰洛·李壽必·崔正愚·權泰東·南炳斗·河大運·朴圭陽 등이 경상북도 達城郡道東書院 유림에게 보낸 통문이다. 이 통문은 도동서원에서 엮은 『各處通文謄草』 第一에 「虎溪書堂來文」이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본문에는 통문의 발급 연도가 기재되어 있지 않으나, 慶州 玉山書院1917년 윤2월 3일자로 호계서당이 발급한 거의 동일한 내용의 통문이 소장되어 있어, 본 통문도 1917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호계서당래문」은 高山書院 復設과 관련하여, 道會 개최 장소와 일자를 통보하기 위해 발급되었다.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광음리에 위치한 고산서원大山 李象靖[1710~1781]을 祭享하던 서원이었는데, 興宣大院君의 서원훼철령에 따라 철폐되었다. 이후 안동군 유림들이 고산서원 복설을 추진하면서, 본 통문을 발급하여 도회 참석을 당부하였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호계서당래문」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먼저 통문 서두에서는 이상정의 학문적 위상을 언급하며, 고산서원 복설의 명분을 제시해 놓았다. 이에 따르면 이상정은 斯文의 도리를 밝힌 학자로 학문의 연원은 退溪 李滉[1501~1570]에게서 비롯되며, 朱子까지 거슬러 올라가기에, 이상정은 우리 사문의 正嫡이고, 후학이 모두 우러러보는 스승이라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이상정을 다시 제향하자는 의론이 지난 1904년(광무 8) 撤筵한 날부터 일어나, 문하의 여러 제자들이 이를 고심해서 계획하고, 논의해 왔다고 하였다. 그리고 근래 士林과 힘을 합쳐, 堂·室·齋와 ?의 칸살을 얽어매는 것이 이미 완성되었고, 계단과 곁채의 위치도 대략 정해졌다고 하였다. 그러나 유독 奉安하는 장소만은 두렵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있다며, 이후부터는 향후 대책을 서술해 놓았다.
먼저 이상정을 높이는데 구차함이 있게 해서는 안 되며, 정중함을 기할 것을 다짐하였다. 그러면서 고산서원을 최초 건립한 후 지난 100여 년 간은 험난한 일들이 거듭 닥쳤으나, 서원이 위치했던 일곱 굽이 계곡과 산에 있는 풀과 나무에는 향기가 남아 있고, 다섯 이랑의 담장에 난 해바라기와 보리는 감회를 더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이상정을 모시는 祠堂이 없이 자취만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우리 후생들이 다 같이 근심하며 두려워하고, 탄식하며 마음 아파하는 것임을 강조해 놓았다. 이어 성하거나 쇠하는 것, 드러나거나 감추어지는 것은 하늘의 운수에 달려있다고 하더라도, 떨쳐 일으켜내는 것은 사람이 모의하는 것에 달려 있기 때문에, 쉬면서 기다릴 필요 없이 노력해서 미약한 정성이나마 다해야 된다며, 여러 사람들의 분발을 촉구하였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으로는 사당의 棟樑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은 단지 유림의 公論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 사회의 여론과 유림의 공론이 모두 같으니, 이것은 바로 하늘이 마음으로 묵묵히 이끌어준 것이고, 機會와 運數가 돌아온 것이 아니겠느냐며, 그러한 증거가 盧江에서의 모임이었다고 하였다. 여기서 여강은 옛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된 虎溪書院이 있던 곳이며, 호계서원으로 賜額 받기 이전의 서원 명칭이었다. 즉, 본 통문을 발급한 호계서당은 철폐된 호계서원에 유림들이 강당만 복원해 놓은 것이다. 통문에서는 이어 이 모임에서 公議가 일제히 일어나 廟宇를 건립하고, 서둘러 성대한 예를 거행할 계획을 세웠는데,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떳떳한 천성을 좋아하는 것에는 멀고 가까움의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하였다. 하지만 일에는 보다 신중함을 기해야 되기 때문에, 오는 3월 17일 안동군龜尾 市基, 즉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망호리 장터에서 도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하였으니, 많은 참석을 당부해 놓았다.
자료적 가치
본 통문은 고산서원의 복설과정을 대략적으로 보여주는 자료이다. 실제 고산서원은 위의 과정을 거쳐 1917년에 복설될 수 있었다.
『道東書院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편, 영남대학교 출판부, 1997
『朝鮮後期 書院硏究』, 이수환, 일조각, 2001
1차 작성자 : 이광우

이미지

원문 텍스트


虎溪書堂來文【柳淵博金翰洛李壽必崔正愚權泰東南炳斗河大運朴圭陽

右文爲通諭事伏以惟我大山李先生倡明斯道紹
往啓來的承淵源接陶山而朔考亭卓然爲斯文之
正嫡而後學之宗師殆質鬼神俟百世而無疑也尸
祝崇奉之論?自甲辰撤筵之日及門諸賢苦心規
?遠近士林齊力來贊堂室齋?間架已成階壇廉
?位置略定而獨揚虔妥奉之所以商量而等待者
蓋以尊衛先生?無一毫苟且而期欲十分鄭重也
自後百餘年之間陽雷之來復無期?雨之幻剝仍
?七曲溪山草樹留馥而五畝宮墻葵麥增感此正
吾黨後生之所共?然而懼愾然而傷者也噫?隆

顯晦雖係於天運而振宣興作實由於人謀與其因
仍玩?以俟不可必之休期不若及時努力以所當
盡之微誠者也然今日之可採者只是儒論耳竊?
輿情之湊合僉議之詢同安知非天心之默誘而機
運之回斡耶今於廬江之會公議齊發以爲建立廟
宇?擧縟禮之計而旋念秉彛好尙遠邇無間慮事
疎密智愚逈別今此莫重之擧又豈一方?局之見
所可專擅哉玆以三月十七日定道會于安東龜尾
市基伏願僉尊?期賁臨得以奉僉敎?擧敦大事
之地千萬幸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