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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達城) 도동서원(道東書院) 소장 『각처통문등초(各處通文謄草)』 제1(第一) 수록 1736년 8월 16일 「예안사림도산서원문(禮安士林陶山書院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10+KSM-XF.1736.2771-20180630.Y185030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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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사회-조직/운영-통문
작성주체 도동서원, 도산서원, 도동서원
작성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작성시기 1736
형태사항 크기: 29.5 X 20.5
수량: 03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대구 도동서원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현소장처: 대구 도동서원 /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관련자료

안내정보

달성(達城) 도동서원(道東書院) 소장 『각처통문등초(各處通文謄草)』 제1(第一) 수록 1736년 8월 16일 「예안사림도산서원문(禮安士林陶山書院文)」
1736년(영조 12) 8월 16일 경상도(慶尙道) 예안현(禮安縣) 도산서원(陶山書院) 유림이 경상도 현풍현(玄風縣)도동서원(道東書院) 유림에게 보낸 통문이다. 이 통문은 조선후기 이후 도동서원 측이 수급한 각종 통문을 엮어 놓은 『각처통문등초(各處通文謄草)』 제1(第一)에 「예안사림도산서원문(禮安士林陶山書院文)」이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예안사림도산서원문」에서 도산서원 유림은 도동서원 유림에게 곽황(郭?)[1530~1569]의 제향(祭享)을 권유해 놓았다. 곽황현풍현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로 1563년(명종 18) 예안현감(禮安縣監)으로 부임했던 인물이다. 곽황은 재임 기간 동안 퇴계(退溪)를 찾아가 문인이 되었으며, 선정을 베풀었었다. 이러한 연고를 바탕으로 도산서원 유림이 도동서원에 본 통문을 보내 곽황의 행적을 기리기 위한 제향 시설 건립을 권유하였던 것이다.
『道東書院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편, 영남대학교 출판부, 1997
『朝鮮後期 書院硏究』, 이수환, 일조각, 2001
1차 작성자 : 이광우

상세정보

1736년 8월 16일 慶尙道 禮安縣陶山書院 유림이 경상도 玄風縣道東書院 유림에게 郭趪의 祭享을 권유하기 위하여 보낸 통문
各處通文謄草 第一
자료의 내용
1736년(영조 12) 8월 16일 慶尙道 禮安縣陶山書院 유림 柳聖和·李守謙·朴重善·金衡國·李守淵·吳浹·尹齊聖 등이 경상도 玄風縣道東書院 유림에게 보낸 통문이다. 이 통문은 도동서원에서 엮은 『各處通文謄草』 第一에 「禮安士林陶山書院文」이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통문에서 도산서원 유림들은 郭?[1530~1569]의 祭享을 권유해 놓았다. 곽황현풍현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로 1563년(명종 18) 禮安縣監으로 부임하였다. 곽황은 재임 도중 陶山書堂을 찾아 退溪의 문인이 되었다. 또한 재임 동안 선정을 베풀었으며, 趙穆·金富弼·琴應壎·琴蘭秀 등이 易東書院을 창건하는데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예안현 유림 입장에서는 곽황의 공적이 남달랐기 때문에 통문을 보내 제향을 권유하였던 것이다.
이에 「예안사림도산서원문」에서는 먼저 곽황의 자질과 행실을 칭송하면서, 퇴계가 생전에 곽황을 위해 쓴 贈別詩를 소개해 놓았다. 이 증별시는 곽황이 세상을 떠난 후 퇴계가 그를 기리기 위해 쓴 祭文으로 『退溪集』 권45에 「祭郭侯?文」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도산서원 측은 곽황의 행적에 대하여 다른 부연 설명 없이, 통문에 제시한 퇴계의 증별시만으로 곽황의 행적을 칭송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곽황의 고향인 현풍현에서는 지금까지 그를 崇奉하는 의논이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멀고 가까운 곳의 여러 章甫들이 애석해 하는 바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곽황이 지방관으로 있을 때 선정을 베푼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유풍을 진작하기 위해 『퇴계집』을 읽을 때마다 이 시문을 보고 느끼는 바가 있다고 하였다. 이에 도산서원은 유림은 享禮 때 공론을 모은 다음, 이 통문을 작성하여 도동서원에 발급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통문 말미에는 현풍현에서 곽황에 대한 제향을 추진해 볼 것을 권유해 놓았다.
자료적 가치
조선후기 院祠의 건립 형태를 보여주는 한 사례이다. 원사는 제향 인물과 관련된 자들이 주도해, 그들의 연고지에 건립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였다. 본 통문에 등장하는 곽황현풍현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였지만, 예안현감으로 있으면서 선정을 베풀었고 퇴계가 각별히 대했던 인물이었기에 도산서원의 유림이 현풍현도동서원곽황의 제향을 권유하였던 것이다.
『道東書院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편, 영남대학교 출판부, 1997
『朝鮮後期 書院硏究』, 이수환, 일조각, 2001
1차 작성자 : 이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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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禮安士林陶山書院文【丙辰八月十六日柳聖和李守謙朴重善金衡國李守淵吳浹尹齊聖
伏以郭先生英特之姿卓絶之行寔爲一時先輩之

所推許退陶老先生贈別詩有曰百歲邦人?誦絃
挽詩有曰汗血臨千里鵬圖擬萬程祭文有曰湖海
之士英俊之寸又曰連城隱璞世莫知寶又曰多士
與起詠慕洋洋又曰殄?之痛無緣之悲云云鳴乎
老先生片言隻字足爲百世之所徵信而稱道如是
嗟惜如是則郭先生學術志業爲吾黨後生之所可
矜式者當如何哉第念貴鄕崇奉之議尙今寂然此
遠近章甫之所共慨然者也生等以桐鄕舊氓山仰
儒風每讀老先生文集至此詩文未嘗不惑想而與
起也玆不敢撰起他語只引老先生集中文字陶

山書院享禮之日收議奉告伏願僉君子速修未遑
之典?奉俎豆之儀以爲士林尊仰之地千萬幸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