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達城) 도동서원(道東書院) 소장 『각처통문등초(各處通文謄草)』 제1(第一) 수록 1906년 7월 「옥산서원문(玉山書院文)」
1906년(광무 10) 7월 경상북도(慶尙北道) 경주군(慶州郡)의 옥산서원(玉山書院) 유림이 경상북도 현풍군(玄風郡)의 도동서원(道東書院) 유림에게 보낸 통문이다. 이 통문은 조선후기 이후 도동서원 측이 수급한 각종 통문을 엮어 놓은 『각처통문등초(各處通文謄草)』 제1(第一)에 「옥산서원문(玉山書院文)」이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옥산서원문」은 손이시비(孫李是非)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경주손씨(慶州孫氏)들을 규탄하기 위하여, 옥산서원 측이 도동서원에 발급한 것이다. 손이시비는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의 학문적 연원(淵源)이 그의 외삼촌인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1463~1529]에서 비롯되었다고 경주손씨 측이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회재의 후손들은 옥산서원을 중심으로 경주손씨의 주장을 반론해 나갔다. 또한 경주손씨 일문은 안동군(安東郡)의 도산서원(陶山書院)에 배지(牌旨)를 보내, 회재의 후손들이 함부로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을 회재의 ‘후학(後學)’이라 주장했다고 규탄하였다. 이 두 문제에 대하여 도산서원 측은 경주손씨의 주장이 외람되다고 비판하였고, 이어 옥산서원 측도 같은 근거로 경주손씨를 규탄하는 통문을 도동서원 유림에게 발급하여 엄척(嚴斥)을 당부하였던 것이다.
『道東書院誌』,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편, 영남대학교 출판부, 1997
『朝鮮後期 書院硏究』, 이수환, 일조각, 2001
1차 작성자 : 이광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