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慶尙道) 풍기군(豊基郡) 풍기향교(豊基鄕校) 소장 1641~1681년 「잡록(雜錄)」 수록 1670년 기사
경상도(慶尙道) 풍기군(豊基郡) 소재 풍기향교(豊基鄕校)에서 엮은 1641~1681년 「잡록(雜錄)」 수록 1670년 기사다. 이 해의 기사에는 한 해 동안 풍기향교가 각종 물품을 마련하게 된 경위를 수록해 놓았다. 먼저 1월 24일에는 풍기군 관아에서 먹과 들깨를 보내주었다. 2월 초9일에는 향교 제의(祭儀) 때 사용할 유보(鍮?)와 유궤(鍮?), 제복(祭服), 탁상(卓上)을 새로 마련하였다. 이때 비용은 풍기군 사림(士林)들이 ‘납목면역(納木免役)’의 방법으로 충당하기로 결의하였다. ‘납목면역’은 양인(良人)이 향교에 포(布)를 바치고 군역(軍役)을 면제 받는 행위를 뜻하는데, 향교의 중요한 경제적 기반 중 하나였다. 8월 초3일에는 대성전(大成殿)·동무(東?)·서무(西?)의 위판독(位版?)과 자리·목두(木豆)·생갑(牲匣)·촉대(燭臺)·반통(飯桶)·작점(爵?) 및 제복 등을 고치거나 새로 마련하였다. 이때 비용은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의 분부로 풍기군 관아에서 지원해 주었다. 9월 20일에는 유작(鍮爵)·죽변(竹?)·폐비(幣?)를 새로 마련하였다. 1670년 기사에서는 관이 물품 마련 비용을 지원해 주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향교가 지방의 관학(官學)이었기에 지방관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 하에 운영되었던 것이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資料集成』(Ⅱ),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