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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慶尙道) 풍기군(豊基郡) 풍기향교(豊基鄕校) 소장 1641~1681년 「잡록(雜錄)」 수록 1658년 풍기군수(豊基郡守) 노상현(盧尙賢)의 상사(喪事) 관련 기사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9+KSM-XG.1658.4721-20170630.Y1721907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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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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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내용분류: 교육/문화-서원/향교-고왕록
작성주체 풍기향교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작성시기 1658
형태사항 크기: 32 X 26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주 풍기향교 /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현소장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관련자료

안내정보

경상도(慶尙道) 풍기군(豊基郡) 풍기향교(豊基鄕校) 소장 1641~1681년 「잡록(雜錄)」 수록 1658년 풍기군수(豊基郡守) 노상현(盧尙賢)의 상사(喪事) 관련 기사
경상도(慶尙道) 풍기군(豊基郡) 풍기향교(豊基鄕校)에서 엮은 1641~1681년 「잡록(雜錄)」에 수록된 1658년의 기사다. 이 기사에서는 1658풍기군 관아에서 세상을 떠난 풍기군수(豊基郡守) 노상현(盧尙賢)의 상사(喪事)를 간략히 소개해 놓았다. 관아에서 세상을 떠났기에 풍기군의 사림들이 상사를 치렀고, 제문(祭文)을 작성해 그의 치적과 명복을 기렸다. 치적에서는 특히 풍기향교 건물을 중건한 사실을 비롯해 교화 정책에 힘썼음을 높게 평가하였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資料集成』(Ⅱ),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상세정보

1658慶尙道 豊基郡 豊基郡守였던 盧尙賢이 관아에서 세상을 떠나자, 풍기군에서 거행된 喪事와 祭文 등을 간략히 기록해 놓은 기사
자료의 내용
慶尙道 豊基郡 豊基鄕校에서 엮은 1641~1681년 「雜錄」에 수록된 1658년의 기사다. 이 기사에는 당시 豊基郡守였던 盧尙賢이 관아에서 세상을 떠난 후, 풍기군에서 거행된 喪事의 과정과 이때 작성된 祭文을 간략히 기록해 놓았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1658년 11월 초8일 풍기군수 노상현이 관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노상현平壤 출신의 문신으로 1658풍기군수로 부임하였었다. 成服 후 都廳을 설치해서 초상을 치렀다. 12월 초4일 發引하였는데, 하루 전날 풍기향교에서 設奠하였다. 祭文은 풍기향교 有司였던 南{(戶+?)/山}가 썼다. 제문에서는 노상현의 善治로 풍기군에 교화가 이루어졌음을 칭송해 놓았다. 특히 노상현이 고을에 邑賢祠를 創立한 공적과 풍기향교 大成殿을 배알한 후 백성을 모아 건물을 중건한 사실을 높게 평가하였다.
자료적 가치
본 기사에서 주목되는 점은 풍기군수 노상현풍기향교 중건을 지원했다는 사실이다. 조선시대 향교는 지방에 건립된 官學이었기에, 그 운영에 있어 지방관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받았다. 특히 향교 장려는 守令考課 중 하나인 ‘興學校’에 해당되었다. 이에 향교 중건처럼 큰 물력과 노동력이 필요한 사업이 있을 경우, 지방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던 것이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資料集成』(Ⅱ),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이미지

원문 텍스트


戊戌十一月初八日平壤盧城主尙賢損官成服後設都
廳治喪事十二月初四日發引前一日本校設奠以祭
文曰維年月日鄕校有司南{(戶+?)/山}謹以菲薄之奠薦悼于
二天先生盧公之靈箕都餘澤培養一?鍾粹雙壁
詩書膾灸眉字風雅德合?籍?衣得門耳濡嘉
言典冊猶存名高金柄華聞休暢朝端雅望長風動
▣穎脫不隔淸津咫尺酸?異尙不能俯仰千新▣
上出俗海幕入亞泮壁焉有屈之天其惠我百里五爲
來何暮也政先撫字?瞭?起一春和煦顧惟敞
邑賢祠創立三載未集後妃下車首訪廟謁顧▣▣
欲乃度乃咨募民以時工徒應卽瓜期尙造或慮謀轉
未論秋建云故此日無妄一度天乎不民失所庇士失
所恃歸咎無地千里松楸道阻且脩靈?不留憑脯
果於奠靈座誠非外▣莫覩莫聞世事淸雲夫復何
言時呼哀自不下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