慶尙道 豊基郡 豊基鄕校 소장 1641~1681년 「雜錄」 수록 訓鍊都監 砲手 後種의 향교 노비 還屬과 관련된 1651년 기사
자료의 내용
1651년 訓鍊都監 砲手였던 後種을 豊基鄕校 노비로 還屬시키는 사안과 관련된 기사다. 이 기사는 慶尙道 豊基郡 풍기향교에서 엮은 1641~1681년 「雜錄」에 수록되어 있다. 후종과 관련된 사건은 1650년 동안 진행되었으며, 본 기사 앞에 수록된 上書와 牒呈을 통해 그 경위를 살펴 볼 수 있다. 원래 후종은 풍기향교의 校奴였으나, 호적을 조작해 양인으로 신분을 상승시켰으며, 향교에서 벗어나 훈련도감의 포수로 편제되었다. 이에 풍기향교의 경제적 기반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풍기군의 士林들이 상서를 올려 후종을 풍기향교 교노로 환속시켜 달라고 청원하였으며, 이를 조사한 官은 후종을 교노로 환속시키고 훈련도감 포수의 역은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라고 지시하였다. 본 기사는 그 이듬해인 1651년 후종을 대신해 새로운 포수를 편제시키는 과정에서 작성된 각종 문서를 간략히 요약한 것으로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1651년 9월 30일 進士 李珣 등이 呈文을 올렸다. 정문의 내용은 나타나 있지 않지만, 새로운 훈련도감 포수를 보고하는 사안으로 보인다. 이에 풍기군은 慶尙監營에 해당 내용을 報到하였고, 경상감영은 포수로 새로 지정된 姜得勢가 無役者임을 입증하는 ?音 2장과 報草를 함께 부치라는 題辭를 내렸다. 이어 이 문서는 2월 23일 올려진 黃立震 등 58인의 呈書에 의거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때 황입진 등은 후종을 대신할 사람으로 良人 강득세를 풍기군에 추천하였고, 풍기군이 이것을 경상감영에 보고하니, 경상감영은 해당 인물에 대해 成冊해서 捧上하라는 지시를 내렸었다.
자료적 가치
조선시대 향교의 경제적 기반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다. 향교 노비는 田畓과 더불어 조선시대 향교의 중요한 경제적 기반 중 하나였다. 이들은 향교에 소속되어 물력 또는 노동력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후기로 갈수록 노비에 대한 관리가 어려워지며, 노비의 양인화가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 풍기향교 측은 경제적 기반이 위축될 것을 우려하여, 양인으로 신분을 상승시킨 후종을 풍기향교 교노로 환속시켜 달라고 청원하였던 것이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資料集成』(Ⅱ),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