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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慶尙道) 풍기군(豊基郡) 풍기향교(豊基鄕校) 소장 1641~1681년 「잡록(雜錄)」 수록 1652년 기사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9+KSM-XG.1652.4721-20170630.Y1721907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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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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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내용분류: 교육/문화-서원/향교-고왕록
작성주체 풍기향교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작성시기 1652
형태사항 크기: 32 X 26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주 풍기향교 /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현소장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관련자료

안내정보

경상도(慶尙道) 풍기군(豊基郡) 풍기향교(豊基鄕校) 소장 1641~1681년 「잡록(雜錄)」 수록 1652년 기사
경상도(慶尙道) 풍기군(豊基郡) 소재 풍기향교(豊基鄕校)에서 엮은 1641~1681년 「잡록(雜錄)」 수록 1652년 기사로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풍기향교가 보유하고 있던 노비 귀향(貴香)이 인근 예천군(醴泉郡)으로 도망갔었는데, 유생들이 추쇄(推刷)하여 다시 잡아 왔다. 또 촌사람들이 풍기향교 대성전(大成殿) 뒤편에 조성된 나무를 함부로 벌목하고 있었기에, 이를 수호하고자 향교 노비 1명을 숲지기로 삼아 관리케 하였다. 이 두 기사는 조선후기 향교 노비의 존재 양상을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資料集成』(Ⅱ),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상세정보

慶尙道 豊基郡 豊基鄕校 소장 1641~1681년 「雜錄」에 수록된 1652년의 逃亡 奴婢 推刷 기사와 士林立議
자료의 내용
慶尙道 豊基郡 소재 豊基鄕校에서 엮은 1641~1681년 「雜錄」에 수록된 1652년 기사다. 1652년 기사에는 逃亡 奴婢를 推刷한 일과 士林立議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1652년 2월 초1일 儒生 金友礪醴泉郡에 呈文을 올렸다. 예천군으로 도망친 풍기향교 노비 婢 六月의 소생 貴香을 추쇄하기 위해서다. 결국 같은 달 초4일 귀향예천군에서 잡혀 왔다. 이때 풍기향교 都有司는 權?, 掌議는 ?耆久, 齋有司는 南斗一黃龍漢이 맡고 있었다.
2월 초5일 사림들이 결의한 뒤, 立議를 작성하였다. 풍기향교 大成殿 뒤편에는 숲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村漢들이 임의로 나무를 벌목하여, 만약 엄금하지 않으면 남는 나무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이를 애석하게 여긴 사림들이 벌목을 엄금하고자, 별도로 校僕, 즉 향교의 奴僕 1명을 藪直으로 임명하여 1년씩 돌아가면서 숲을 관리케 하자고 결의하였던 것이다.
자료적 가치
향교 노비의 존재 양상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다. 향교 노비는 官奴婢로 향교에 일정한 물력과 노동력을 제공하였기에, 향교 입장에서는 중요한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이에 풍기향교 측은 타 고을로 도망간 노비를 추쇄하여 경제적 기반을 유지하려 했던 것이다. 사림입의에서 확인되는 藪直, 즉 숲지기는 향교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향교 노비의 존재 양상을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된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資料集成』(Ⅱ),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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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壬辰二月初一日送儒生金友礪醴泉官推尋逃亡婢六月所生貴香
初四日捉來
都有司權?
掌議?耆久
齋有司南斗一
黃龍漢
士林立議
聖殿後林藪村漢任意斫伐若不嚴禁則餘存無幾爲士林
者豈不痛哉今後則別定校僕一名爲藪直周年相遞使
之禁護無使躍之事
壬辰二月初五日校任上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