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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慶尙道) 풍기군(豊基郡) 풍기향교(豊基鄕校) 소장 1641~1681년 「잡록(雜錄)」 수록 1665년 기사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9+KSM-XG.1665.4721-20170630.Y1721907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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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내용분류: 교육/문화-서원/향교-고왕록
작성주체 풍기향교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작성시기 1665
형태사항 크기: 32 X 26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주 풍기향교 /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현소장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관련자료

안내정보

경상도(慶尙道) 풍기군(豊基郡) 풍기향교(豊基鄕校) 소장 1641~1681년 「잡록(雜錄)」 수록 1665년 기사
경상도(慶尙道) 풍기군(豊基郡) 소재 풍기향교(豊基鄕校)에서 엮은 1641~1681년 「잡록(雜錄)」 수록 1665년 기사다. 이 해의 기사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역대 풍기향교 교임(校任)의 성명을 기록해 놓은 교임안(校任案) 보수다. 이를 통해 당시 풍기향교 교임이 도유사(都有司), 유사(有司), 장의(掌議), 재임(齋任), 전곡유사(典穀有司) 체제로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기사는 풍기향교 대성전(大成殿) 편액 글자를 게시하는 내용이다. 세 번째 기사는 풍기향교가 보관하고 있던 각종 서책(書冊)을 새롭게 단장하고 정리했다는 기사다. 향교의 도서관적 기능을 살펴 볼 수 있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資料集成』(Ⅱ),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상세정보

1665慶尙道 豊基郡 豊基鄕校의 校任案 보수, 大成殿 扁額 게시, 書冊 보수 관련 기사
자료의 내용
慶尙道 豊基郡 소재 豊基鄕校에서 엮은 1641~1681년 「雜錄」에 수록된 1665년 기사다. 기사에는 校任案·扁額·書冊 관리 내용을 수록해 놓았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교임안 보수 관련 기사다. 향교에는 10여 秩의 장부가 있았는데, 이 중 세 건 중 하나는 齋任秩, 하나는 掌議秩, 나머지 하나는 典穀有司秩이었다. 즉 교임의 명부였던 것이다. 그러나 都有司를 기록해 놓은 秩은 따로 작성하지 않았다. 유사와 함께 같은 명부에 도유사의 이름을 기재하였는데, 郭再周가 보기에 유사가 교체될 때마다 도유사의 이름도 노출되니 체면상 부당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런 까닭에 새로 1건의 秩을 더 만들어 都有司秩, 즉 都有司案으로 제작하였으며, 永世토록 보존하기를 당부해 놓았다. 그리고 장의질은 오래되어 파손되었으니 새로 보수한다고 했다. 이때가 2월 초하룻날이었으며, 교임이었던 곽재주가 그 경위를 誌하였다.
두 번째는 편액 게시와 관련된 기사로 날짜는 동일하다. 대성전 편액의 ‘大成殿’ 세 글자는 조정에서 새겨 준 것이기에 楣間은 8도 모두 동일하다고 했다. 이로 인해 2월 초10일 上丁에 告辭한 후, 이 편액을 게시할 것임을 밝혀 놓았다.
세 번째 기사는 이 해 새로 부임한 교임 주도로 풍기향교 소장 서책이 보수되는 과정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하지만 해당 교임의 성명은 기재해 놓지 않았다. 이에 따르면 2월 초6일 새로 교임이 임명되었고, 그는 초8일 향교에 내도하였다. 그리고 바로 향교가 소장하고 있던 여러 서적을 살펴보았는데, 인간 한 후 장식하지 않은 것, 파괴되었으나 새로 冊衣하지 않은 것, 양면이 모두 朽敗한 것이 많음을 목격하였다. 더구나 案上의 서책은 胡亂 이후 無秩한 상태라고 했다. 이에 서책 보수를 시작하였는데, 이때 豊基郡守의 부조도 받았다. 그러나 첫 보수 작업은 다른 번잡한 일 때문에 끝내지 못하였다. 이에 재차 서책 보수를 시도하였는데, 먼저 유사에게 白紙 7권을 바꾸어 오게 해서, 책을 장식하는데 사용하였다. 또 궤짝 안에 있던 休紙 약간으로 校案 7건과 훼손된 서책 41권을 보수하였다. 하지만 교안의 경우 그 기록이 이어지지 않고, 종이가 훼손되어 중간에 결락된 것이 매우 많았다. 또 종이가 부족해 모두 보수하지 못하였음을 한탄하고 있다. 서책은 잃어버린 것이 심히 많았고, 完帙은 매우 적었다. 이에 서책을 다시 정리·보관한 후, 전후의 置簿를 상세히 고증하여 열람자를 파악해 그 전말을 조사하였음을 밝혀 놓았다.
자료적 가치
조선시대 향교의 운영 실태를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다. 먼저 풍기향교의 교임은 도유사·유사·장의·재임·전곡유사 체제였으며, 이들의 성명을 기록해 놓은 교임안이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풍기향교에는 많은 서책이 보관되어 있었음이 나타난다. 향교는 지방 官學으로서 교육·교화와 더불어 도서관의 기능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資料集成』(Ⅱ),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이미지

원문 텍스트


乙巳二月初吉郭再周
校十有秩三件一則齋任秩一則掌議秩一則典穀
有司秩也都有司獨無是秩同藏文簿於有司
之秩迭相開閉體面不當故加備新秩一件以爲
永世相傳之規掌議秩古也破毁幾不用修而改
之年月日上同
大成殿三大字朝家來到刻而揭之諸楣間
八道同之仍二月初十日上丁也別無告辭揭之
日書上同
余二月初六日冒任初八日來到校中試閱書籍
或有印後不粧者或有破壞無衣者或有兩漏
朽敗者狼籍案上胡亂無秩閱之未了不覺?
然將欲改粧旋極力綿將此一款卽?太守以
萬萬一之補則始許而終違此是撫字心勞不遑他
事之致也謀於有司貿得白紙七卷加於衣貼於禮又
搜櫃中得休紙若干丈又毁舊校案七件而用之所粧
冊四十一卷也其錄無係斷紙破之卷厥甚多而紙地
不足未得盡改是可恨也但書籍散失者太多而完
秩者甚少姑以見存之卷爲籍以藏之後之覽者詳
考其前後置簿則可知其顚末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