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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慶尙道) 풍기군(豊基郡) 풍기향교(豊基鄕校) 소장 1692~1720년 「향교잡록(鄕校雜錄)」 제2(第二) 수록 1719년 기사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9+KSM-XG.1719.4721-20170630.Y172190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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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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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내용분류: 교육/문화-서원/향교-고왕록
작성주체 풍기향교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작성시기 1719
형태사항 크기: 24 X 22.5
수량: 2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주 풍기향교 /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현소장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관련자료

안내정보

경상도(慶尙道) 풍기군(豊基郡) 풍기향교(豊基鄕校) 소장 1692~1720년 「향교잡록(鄕校雜錄)」 제2(第二) 수록 1719년 기사
경상도(慶尙道) 풍기군(豊基郡) 소재 풍기향교(豊基鄕校)에서 엮은 1692~1720년 「향교잡록(鄕校雜錄)」 제2(第二) 수록 1719년 기사다. 이 해의 기사에는 쌍악사(雙岳寺)봉명사(鳴鳳寺)의 백지(白紙) 납부, 거접(居接) 활동과 풍기군수(豊基郡守) 윤헌주(尹憲周)의 물력 부조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향교의 여러 경제적 기반 가운데, 향교에 소속되어 물력 또는 노동력을 바치는 속사(屬寺)의 존재 양상과 관의 부조에 대해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資料集成』(Ⅱ),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상세정보

1719慶尙道 豊基郡 소재 豊基鄕校의 물품 마련 및 居接 관련 기사
鄕校雜錄 第二
자료의 내용
慶尙道 豊基郡 소재 豊基鄕校에서 엮은 1692~1720년 「鄕校雜錄」 第二에 수록된 1719년 기사로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1719년 2월 초4일 大祭 때 鳳鳴寺雙岳寺에서 白紙 1권씩을 납부하였다. 당시 풍기향교 都有司는 黃壽期였다.
7월 16일 풍기향교에서 居接을 실시하였는데, 豊基郡守 尹憲周의 지시에 의한 것이다. 풍기군수 윤헌주는 거접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풍기향교와 관내 書院에 白米·甘醬·菜蔬 등을 지원해 주었다. 풍기향교는 23일 罷接한 후, 이를 옮겨 왔다. 그리고 8월 파접한 후에는 학문 권장의 뜻을 기리는 시 10수를 지었다고 한다. 당시 풍기향교 도유사는 南昌壽, 掌議는 安瑩, 齋任은 黃墅權命來가 맡고 있었다.
자료적 가치
1719년 기사에서는 조선시대 향교의 경제적 기반과 강학 활동에 대해 살펴 볼 수 있다. 경제적 기반으로는 屬寺와 관의 부조가 확인되는데, 속사는 향교에 소속되어 물력 또는 노동력을 제공해 주는 사찰을 뜻한다. 당시 풍기향교명봉사쌍악사를 속사로 점유하고 있었다. 한편 향교는 지방에 설치된 官學이었고, 향교의 장려는 守令考課 가운데 ‘興學校’에 해당되는 사안이었기에, 지방관은 수시로 향교에 물력을 지원해 주었다. 이에 1719년 기사에서처럼 풍기군수 윤헌주풍기향교에 거접을 지시하면서, 필요한 물력을 부조해 주었던 것이다. 거접은 향교에서 校生을 대상으로 일정 기간 동안 실시하는 강학 활동을 뜻한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資料集成』(Ⅱ),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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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己亥二月初四日大祭時鳴鳳雙岳兩寺白紙各一卷式備納
都有司黃壽期
同年七月十六日始接蓋城主尹公憲周下筆以才有意於士子勸?
頗有未遑之事且緣農務之未論有志乎逐矣本月期下▣校院指
撑白米二石又下甘醬六斗▣魚十束菜蔬價正一石故校院勿運所▣
本校至二十三日罷接次移校院至八月期吉罷接實前古未有上

感事之士奉蔚然興起援護所製令十首而▣來則每日有▣等

都有司南昌壽
掌議安瑩
齋任黃墅
權命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