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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이채일(李彩一) 상서(上書)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B.1900.0000-20180630.6202310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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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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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작성주체 이채일, 영천군
작성시기 1900
형태사항 크기: 37.0 X 67.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초전 벽진이씨 명암고택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월곡 1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관련자료

안내정보

1900년 이채일(李彩一) 상서(上書)
1900년(광무 4) 2월 7일에 영천(永川) 상원동(上元洞)에 사는 이채일(李彩一)이 고을 관아에 올린 상서(上書)이다. 1881년~1882년에 산송을 벌인 족인(族人) 이승은(李承殷)의 아들인 이순후(李淳厚)가 해당 산지의 목재를 두고 충돌이 발생하여 소송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올린 것이다.
1차 작성자 : 유지영

상세정보

1900년에 永川 上元洞에 사는 李彩一이 고을 관아에 올린 上書
1900년(광무 4) 2월 7일에 永川 上元洞에 사는 李彩一이 고을 관아에 올린 上書이다. 벽진이씨 문중은 1881년 9월부터 1882년 12월까지 族人인 李承殷紫陽面 마을 뒤에 있는 선산을 두고 분쟁을 벌인 바 있다.
분쟁 발생 8년 후 李承殷의 아들 李淳厚永川郡 관아에 呈訴하자, 이를 무고라고 항변하기 위해 李彩一이 올린 것이다.
上書의 내용에 언급된 李淳厚가 呈訴한 내용은 본인의 아버지인 李承殷李彩一 집안의 사람들로부터 구타를 당했다는 것이다. 지난번에 문제가 된 산지에 있는 나무의 소유를 두고 충돌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李淳厚 등은 예전에 그곳에 나무를 심은 사람은 아버지인 李承殷이므로 그곳의 나무는 본인들 소유라는 주장을 하며 수차례 베어다가 팔았다.
이에 대해 李彩一은 구타한 사실이 없으며, 李淳厚 등이 베어간 나무는 ‘壽木’ 즉 오래된 나무로 불과 10여 년 전에 심은 나무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1881년 당시 偸葬한 무덤은 李承殷의 어머니 무덤과 형 내외의 무덤인데, 관아의 판결에 따라 파낸 것은 어머니 무덤뿐이고 형 내외의 무덤은 그대로 있다고 고발하였다.
이상과 같은 주장에 대해 永川郡 관아에서는 李淳厚가 무고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7일에 다음과 같이 처결을 내렸다. "처음 李淳厚의 訴狀의 글을 보고 사건이 괴이하지 않은가 싶었다. 그래서 對卞시키기 위해 잡아다 대령시켰다. 지금 너의 訴狀의 글을 보니 李淳厚가 誣訴한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고, 아울러 사대부 집안이 골육 간에 소송하는 일이 놀랍고, 양쪽의 사실 곡절은 문중에서 파악해서 다시 보고하라고 하였다.
朝鮮時代 明文에 관한 文書學的 硏究, 김성갑,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4
1차 작성자 : 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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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900년 이채일(李彩一) 상서(上書)

紫陽上元洞化民李彩一。謹百拜齋沐上書于
城主閤下。伏以。明侯下車之後。民安其業。士知其向。雖愚夫愚婦。無一有梗化之漢
矣。豈意今者近出於民之族中也哉。民抱此狀入此庭。自不覺愧悚交並。而事係
先壠。不得不卞誣乃已。伏乞。洞燭焉。民之先山在洞之後麓。數年前淳厚
。偸葬其親於先塋腦後無步之地。又偸其兄於腦左二十步之內。自門中擧
官呈寃。只掘其母墳。而未掘其兄墳。以此揆之。則承殷之凌蔑一門。無倫敗僞
從可知矣。以若腸肚。何言不誣。何事不悖乎。今淳厚以毆打其父爲言。以淳厚
之孝。胡爲在傍岸視。只任其打而已乎。若眞箇被人毆打。則淳厚之只岸視父
打。而無尙一臂捍之者。其罪似不卞於打之者也。此不待多卞。民之兄。民之弟。以似輪
非輪之症。積月呻吟。一鄕所共知。奚暇有毆人之者也哉。大抵承殷父子。自絶門中
之後。無地逞毒。逢人作惡。以先塋手植松楸言之。承殷父子。始也。則詐稱其父
壽木。而伐而賣之者。不知幾番。中也。則如狂如醉。以人不較我爲長技。所謂大門中
標木任意斫賣。今也。則恃其老狼。尤無忌殫。門丈老壽木橫奪。又不知幾
番。至於民。則爲親壽木。昨年而奪二株。今年而又奪其所餘一株。是可忍爲
之事乎。日前。自門中將以告官之意。責之。則渠亦有人之情者。前後其罪。自顧
無以自逭。乃先使訴誣於明政之下。要以自脫其罪。噫。一門之公議。渠或蔑之。而
三尺之王章。渠敢枉乎。蔽一言。渠曰渠。民曰民。是切想明侯業已洞悉。而如
此誣訴。不可尋常覈白。更伏乞。特賜穎差。一番摘奸。則後之誣訴。頭頭綻露否爾。
則又分付於民之大門中。使之稟報。則又不待申卞。而自明矣。噫。淳厚是人子也。元無毆打
其父之事。一洞所共知。一門所共知。而渠乃文以毆打其父。眞孝子也。綱常之變。孰果
擔之乎。彼狀曰私嫌渠之一偸二偸。門無一言。去年斫。今年伐。而又門無一言。則渠果曰。無
嫌云爾耶。彼又曰爲親伐木。今二月之中。是果伐壽木之時乎。承殷父子之故斫人壽木。
不於春。則必於夏。其害人凶計。抑又甚矣。爲親之說。豈成說乎。更伏乞。洞燭後。以
繩其罪者之罪。使民等八九代先壠。俾保於來後。千萬血祝之至。

城主處分。庚子二月初七日。

官[印]

初見李淳厚之狀辭。則事
或無怪。故對卞次捉待矣。
今見汝之狀辭。淳厚之誣
訴可知。先告無罪而然歟。爲
其士夫之道。骨肉相訟。節
節痛駭。兩隻曲直。自門中
擧實報來向事。
初七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