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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 이승한(李承翰) 등 소지(所志)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B.1881.0000-20180630.6202310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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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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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작성주체 이승한, 이승해, 이정학
작성시기 1881
형태사항 크기: 77.5 X 55.0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초전 벽진이씨 명암고택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월곡 1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관련자료

안내정보

1881년 이승한(李承翰) 등 소지(所志)
1881년(고종 18) 9월에 영천(永川)에 사는 이승한(李承翰) 등이 겸관(兼官)에게 올린 소지(所志)이다. 문중 선산에 함부로 장사를 지내고 있는 족인(族人) 이승은(李承殷)의 행동을 고발하고, 그의 친모 묘소를 파내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다.
1차 작성자 : 유지영

상세정보

1881년에 永川에 사는 李承翰 등이 兼官에게 올린 所志
1881년(고종 18) 9월에 永川 紫陽面에 사는 李承翰 李承海 李楨鶴 등이 兼官에게 올린 所志이다. 벽진이씨 문중은 族人인 李承殷紫陽面 마을 뒤에 있는 선산을 두고 산송을 벌였다.
李承翰 등은 소지 본문에서 분쟁의 경과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저희 선조의 분묘는 郡의 북쪽 元覺山 亥坐에 있습니다. 자손들이 이로 인해 주변에 거주하면서 금년까지 성심으로 수호해 오고 있습니다. 지난 기묘년(1879) 5월에 族人 李承殷이 친모를 階下의 闊遠한 땅에 장사지내고자 하며 문중에 애걸했습니다. 그가 정의가 두터운 친척의 관계에 있었기에 끝내 저지하기 어려워서 억지로 入葬을 허용했습니다. 이때는 增廣試를 설행하여 온 문중 사람이 과거를 보러 갔었는데, 그가 이 빈틈을 엿보고는 장소를 바꾸어 선산의 單龍을 압박하는 몇 보 안 되는 땅에 장사를 지냈습니다. 그도 역시 자손인데 이 어찌 차마 할 짓입니까. 이치를 들어 책망하고 타이르자 이장한다고 기필하며 말했는데, 지금까지 미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큰 형수의 상을 당하자 또 그 큰 형의 옛 묘를 파다가 ‘親山의 階下에 繼葬한다’라고 칭하면서 다음 달 1일로 날짜를 정하여 시행한다고 합니다. 하는 짓이 거리낌이 없으니 세상에 어찌 이렇게 선조를 업신여기고 자신의 친부모만 위하는 것이 이 사람 같을 수 있습니까. 당초에 階下의 장소를 허락받았다가 장소를 바꾼 이후, 오늘의 계획은 이미 예전에 포석을 깔아 놓은 것이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兼官에서는 29일에 처결을 내리길, "마땅히 금해야 하는지 아닌지를 상세히 圖形을 그려서 보고할 것이다."라고 하며, 이를 永川의 禮吏에게 지시하였다.
朝鮮時代 明文에 관한 文書學的 硏究, 김성갑,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4
1차 작성자 : 유지영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81년 이승한(李承翰) 등 소지(所志)

永川紫陽居化民▣…▣承翰李承海李楨鶴。謹齋沐上書▣
城主▣▣。伏以。事在▣…▣痛迫子孫訟出不已。而決在法司。伏乞垂察焉。民▣…▣祖墳墓在於郡北元覺
亥坐▣…▣子孫因居▣…▣今年▣…▣心守護矣。頃▣五月。族人承殷欲葬親於階下闊遠之地。懇乞
門中。而其在懿親之誼。終難沮禁。强許入葬。而時則增廣設行。一門赴擧。瞰此空虛。換處犯葬於單龍壓臨不步之地。
渠亦子孫。是豈忍爲哉。據理責諭。必曰移葬。遷稽至此。而今遭渠伯嫂喪。又掘其伯兄舊墓。稱曰繼葬於親山階下。以來
月初一定日施役。無所顧忌。世豈有侮慢祖先。獨爲其親。如此人哉。當初之受諾階下。換處後。今日之計。已排布於昔年
矣。民等與族親相訟。非不知羞恥。而此若不掘。則累累犯葬。不知至於何境。事在不得。則此訟烏可已乎。伏願
閤下。圖形摘奸。嚴懲其侮祖犯葬之罪。掘去其親墓。以杜次次繼葬之弊事。
兼城主處分。辛巳九月日。李大鉉李以鉉李珏鉉李光鉉李啓鉉李源李承閏李承鐸李浩李承文李承百
李承奎李承馥李承敬李承年李載坤李學鉉李郁鉉李承觀等。

兼官[署押]

當禁不當
禁。詳細圖形馳
告向事。
卄九日。
永川禮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