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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 이승한(李承翰) 등 산도(山圖)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B.1881.0000-20180630.6202310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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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작성시기 1881
형태사항 크기: 94.0 X 62.0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초전 벽진이씨 명암고택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월곡 1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관련자료

안내정보

1881년 이승한(李承翰) 등 산도(山圖)
1881년(고종 18) 10월에 영천(永川) 자양면(紫陽面)에 사는 이승한(李承翰) 등이 고을관아에 올린 상서(上書)의 처분에 따라 같은 달 26일에 작성한 산도(山圖)이다. 족인(族人) 이승은(李承殷)이 기존 산도(山圖)에 문제를 제기하여 다시 작성한 것이다. 수령은 이승은의 두 무덤을 이장하라고 지시하였다.
1차 작성자 : 유지영

상세정보

1881년에 永川에 사는 李承翰 등이 고을관아에 올린 上書의 처분에 따라 작성한 山圖
1881년(고종 18) 10월에 永川 紫陽面에 사는 李承翰 등이 고을관아에 올린 上書의 처분에 따라 같은 달 26일에 작성한 山圖이다. 벽진이씨 문중은 族人인 李承殷紫陽面 마을 뒤에 있는 선산을 두고 산송을 벌였다.
분쟁의 대상이 되는 선산은 元角山에 있다. 李承翰 등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族人 李承殷이 2년 전에 문중에 요청하여 친모를 선산에 入葬하는 것을 허락받았는데, 허용한 지점이 아닌 다른 곳에 入葬하였다. 그리고 금년에 다시 그 아래에 큰 형의 묘를 이장하려고 하였다. 이에 李承翰 등은 문중 조상의 묘소를 핍박하는 지점임을 주장하며 李承殷의 친모의 무덤을 파내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처음에는 고을의 수령이 부재중이어서 兼官에게 호소했고, 고을 수령이 돌아오자 다시 呈訴했다. 이때 李承殷이 이전에 그린 圖形에 문제를 제기하여 다시 그리게 된 것이다.
起訟한 사람이자 본 山圖에 적힌 題音의 수취자는 李大鉉, 李承翰, 李楨鶴 3명이고, 소송 상대방은 李承殷과 그의 큰형의 아들인 李章厚이다. 조사를 맡은 色吏는 刑吏 金斗潤이다.
그림에 따르면 李承殷 어머니 분묘는 李大鉉의 8대조 분묘를 기준으로 거리가 33步이고 앉으나 서나 모두 보이는 위치에 있다. 또한 李承殷의 큰형과 형수를 合窆하고자 새로 점유하여 매장한 지점과는 거리고 28보이고 앉으나 서나 모두 보이는 위치에 있다.
이상과 같은 圖形을 살핀 후 수령은 처결을 내리길, "이 圖形을 보니, 李承殷의 親葬을 허용한 것은 당초의 후의였다. 지금 그의 형 무덤을 繼葬이라고 칭하는 것은 전체 山局을 삼키려는 계획이니 관아에서 督掘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士族 一門의 일인데 어찌 相殘하는가. 李承殷은 속히 이장하여 다시 번거롭하게 하지 말 것이다. 그리고 李大鉉도 전체 宗中의 우의를 위하여 옮겨갈 다른 땅을 택하여 점해 주어 좋게 시행토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하였다.
朝鮮時代 明文에 관한 文書學的 硏究, 김성갑,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4
1차 작성자 : 유지영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81년 이승한(李承翰) 등 산도(山圖)

元角後麓
李承殷母墳。戌坐辰向。相距三十三步。坐立俱見○李大鉉八代祖父母墳。亥坐巳向。相距二十八步半。坐立俱見●李承殷伯兄合窆。戌坐辰向。新点。李章厚父母塚。

起訟。李大鉉[手決]。李承翰[手決]。李楨鶴[手決]。
隻。李承殷李章厚。喪不着
摘奸刑吏。金斗潤
觀此圖形。則李承殷之親葬許施。當初之
厚誼也。今此其兄塚之稱以繼葬。計在
全呑一局之計。所當自官督掘是矣。係
是士族一門之事。豈可相殘乎。承殷
則斯速移葬。無至更煩是遣。李大鉉
段置。爲僉宗誼。使之擇占移去之意
好爲做去。宜當向事
辛巳十月卄六日。
官[署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