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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밀양(密陽) 예림재(禮林齋) 통문(通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6+KSM-XF.1897.4827-20140630.E47843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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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사회-조직/운영-통문
작성주체 이락서당, 성주향교, 모연재, 월천서당
작성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작성시기 1897
형태사항 크기: 94 X 58.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관련자료

안내정보

1897년 밀양(密陽) 예림재(禮林齋) 통문(通文)
1891년 1월, 응와 이원조(1792~1872)의 문집과 관련된 사건으로 밀양에 있는 예림재에서 성주 향교에 보낸 통문이다. 성산이씨 가문에는 이 당시(1896~1897년)에 각지의 향교 등 단체에서 보낸 13건의 통문이 전해지고 있는데, 모두 이재의이봉우의 잘못을 성토하고 처벌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본 예림재에서 보낸 본 통문에서는 이재의이봉우의 행위를 ‘그들이 칼로 책을 도려낸 것은 스스로 조상의 이름을 범한 것이고, 그들이 몽둥이로 책판을 훼손한 것은 스스로 조상의 행실을 훼손한 것이다.’라는 말로 비판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명경일

상세정보

1891년 1월, 凝窩 李源祚(1792~1872)의 문집과 관련된 사건으로 密陽에 있는 禮林齋에서 星州 鄕校에 보낸 通文.
1891년 1월, 凝窩 李源祚(1792~1872)의 문집과 관련된 사건으로 密陽에 있는 禮林齋에서 星州 鄕校에 보낸 通文이다. 禮林齋는 원래 禮林書院이었고, 1567년(明宗 22)에 金宗直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밀양 慈是山 아래에 창건한 德城書院이었다. 이를 1634년(仁祖 12) 밀양 부북면으로 이건하면서 禮林書院이라 불렀던 것이고 1868년(高宗 5)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로 훼철되었다가 1874년에 강당을 복구하고 禮林齋로 개편하였다.
星州에 있는 星山李氏 가문의 인물인 李源祚는 조선후기 노론 집권기에 남인으로서는 드물게 1품의 반열에 올랐고, 학문적으로는 영남 주리론 계열의 대표적인 학자였다. 그의 사후 凝窩先生文集을 간행했다.
그런데 이 문집에 실린 문구에 불만을 제기하여 소란을 피운 사건이 일어났다. 즉 白洞에 사는 晴暉堂 李承(1552~1596)의 후예인 李載儀李鳳宇가 문집 안에서 晴暉堂을 ‘公’으로 칭한 것에 불만을 품고 강제로 冊板을 훼손한 것이다. 李承(1552~1596)의 본관은 全州이고, 행적이 國朝人物考에 실려 있는 인물이다. 실제 凝窩先生文集을 보면 ‘新溪書院追享時告由文’이란 글이 있다. 여기서 ‘公과 師友들은 덕을 갖추어 행실이 온전했고[公維師友 德備行全]’라는 구절에서 李承을 ‘公’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星山李氏 가문에는 이 당시(1896~1897년)에 각지의 향교 등 단체에서 보낸 13건의 통문이 전해지고 있는데, 모두 李載儀李鳳宇의 잘못을 성토하고 처벌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본 禮林齋에서 보낸 본 통문에서는 李載儀李鳳宇의 행위를 ‘그들이 칼로 책을 도려낸 것은 스스로 조상의 姓號를 범한 것이고, 그들이 몽둥이로 책판을 훼손한 것은 스스로 조상의 행실을 훼손한 것이다.’라는 말로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이 李氏들이 이전에도 이와 같은 잘못을 한 적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즉 寒岡[鄭逑]이 지은 武屹九曲이라는 글에 ‘立巖’이라는 글자가 晴暉先生의 遺墟에 있는 바위 면에 새겨져 있다고 우긴 것이었다. 그때는 그들에게 글을 보내어 성토하려다가 그쳤으나, 이번에 또 斯文의 變을 일으켰으니 다스리지 않을 수 없다고 하고 있다.
본 通文에 연명한 사람은 齋有司 孫亮大, 朴宜永를 비롯한 39명이다.
1차 작성자 : 명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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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밀양(密陽) 예림재(禮林齋) 통문(通文)

通文。
右文爲通告事。伏以。凡所以敬先生長者者。琴瑟尙戒勿越。卽席亦訓毋蹶。矧論道講禮功業事行所載之書。人孰不尊閣而祗敬之乎。噫 定憲公李先生德義問
學之盛。先王之所禮敬也。儒苑之所矜式也。雖杖屢所過山川草木之微。尙可以愛其精彩守護之道。必加勤謹。而苟或有蕘竪樵兒無所知覺偶加斧斤。猶當懲
戢不饒。況所尊閣所祗敬之書之板。而刀而割之。梃而毁之者。豈忍一任其頑惡。而不思所以懲戢之乎。且伏念 晴暉李先生 宗室懿親 文穆道交溪堂巖舍有揖
讓之遺風。心山認旬守敬恭之家法。豈意生此悖孫肆然自絶於斯文乎。竊相其所割之紙所毁之板。乃渠祖縟禮之文。而渠祖之姓號載焉。行誼述焉。以渠刀而犯渠
祖之姓號。以渠梃而毁渠祖之行誼。其所作孼。豈但曰不敬於 定憲公而已哉。貴鄕所以爲一省模楷者。蓋人人知入孝出悌之義。家家成謙牧巽順之俗。而能不
墜先正遺韻也。以今李載儀李鳳宇之聚徒作變。無所顧忌者言之。家而非孝。鄕而非悌。而謙巽之風掃地盡矣。寧不悲哉。蓋文集題目之例。靡不一遵手草而
定之。然有或略聽玄晏之操縱者矣。方其丁乙也。苟一開說其然不然之端。則以 晴暉堂遺逸之標醇謹之行書之。以先生固足以不愧矣。及到入梓頒帙之日。則本家
之不計許竄改。重事體也。李氏之心。只知己之欲尊祖。而不知人之重事體之爲尊祖。又不知刀卷毁板之爲自辱其祖。李氏之瞢然處事。吁亦矜矣。曾聞。李氏以
寒岡老先生武屹九曲中立巖一區。稱爲 晴暉先生遺墟而偃然顯鑱於巖面云。生等不勝訝惑。意欲馳書。以討其妄率之失。而似已剗祛新鑴俾名區秀石得保
武屹舊面目矣。改過與無過無異。故姑止之矣。今復斯文變擧又出此家。此而不治。又未知將做出何樣弊端也。伏願 僉尊亟施重罰。使李氏諸人得以知尊祖敬賢之義。千
萬幸甚。 丁酉正月 日。密陽禮林齋會中。
齋有司幼學孫亮大 朴宜永 製通進士安孝俊都事安益遠府事安鍾悳 幼學盧相稷 寫通幼學朴崇穆 孫弘秀 李焌九 申泰龍 許垈
進士安鍾奭 會員幼學朴起永 申永愚 李鍾昊 孫必秀 李秉九 安孝悳 申永瑀 李敏九 孫敬秀 孫瑢憲
安彦淳 李漢九正言盧相益 幼學孫鳳遠 進士曺世煥 注書安孝淵 幼學孫振晳 李珉九 安徽遠 孫基鶴 安鍾徹
孫基鎬 金鳳永 注書朴海喆 幼學安鍾卨 孫基赫 李炳校 等。原。

[피봉]
謹封。
[피봉]
星州鄕校
慕淵齋
月川 僉尊前。
密陽禮林齋會中通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