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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칠곡(柒谷) 녹봉서당(鹿峯書堂) 통문(通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6+KSM-XF.1897.4785-20140630.E47844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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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사회-조직/운영-통문
작성주체 녹봉서당, 성주향교, 회연서당, 월천서당
작성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작성시기 1897
형태사항 크기: 97 X 54.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관련자료

안내정보

1897년 칠곡(柒谷) 녹봉서당(鹿峯書堂) 통문(通文)
1891년 1월 10일, 응와 이원조(1792~1872)의 문집과 관련된 사건으로 칠곡 녹봉서당에서 성주 향교에 보낸 통문이다. 성산이씨 가문에는 이 당시(1896~1897년)에 각지의 향교 등 단체에서 보낸 13건의 통문이 전해지고 있는데, 모두 이재의이봉우의 잘못을 성토하고 처벌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녹봉서당에서는 성주 향교 어르신들에게 죄를 성토해야 한다고 하고, 더불어 유안(儒案)이 더러워지지 않게 이름을 삭제해야 한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명경일

상세정보

1891년 1월 10일, 凝窩 李源祚(1792~1872)의 문집과 관련된 사건으로 柒谷의 鹿峯書堂에서 星州 鄕校에 보낸 通文.
1891년 1월 10일, 凝窩 李源祚(1792~1872)의 문집과 관련된 사건으로 柒谷 鹿峯書堂에서 星州 鄕校에 보낸 通文이다.
星州에 있는 星山李氏 가문의 인물인 李源祚는 조선후기 노론 집권기에 남인으로서는 드물게 1품의 반열에 올랐고, 학문적으로는 영남 주리론 계열의 대표적인 학자였다. 그의 사후 凝窩先生文集을 간행했다.
그런데 이 문집에 실린 문구에 불만을 제기하여 소란을 피운 사건이 일어났다. 즉 白洞에 사는 晴暉堂 李承(1552~1596)의 후예인 李載儀李鳳宇가 문집안에서 晴暉堂을 ‘公’으로 칭한 것에 불만을 품고 강제로 冊板을 훼손한 것이다. 李承(1552~1596)의 본관은 全州이고, 행적이 國朝人物考에 실려 있는 인물이다. 실제 凝窩先生文集을 보면 ‘新溪書院追享時告由文’이란 글이 있다. 여기서 ‘公과 師友들은 덕을 갖추어 행실이 온전했고[公維師友 德備行全]’라는 구절에서 李承을 ‘公’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星山李氏 가문에는 이 당시(1896~1897년)에 각지의 향교 등 단체에서 보낸 13건의 통문이 전해지고 있는데, 모두 李載儀李鳳宇의 잘못을 성토하고 처벌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鹿峯書堂에서 보낸 본 통문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에 歐陽脩范仲淹 碑文의 ‘忠宣’이라는 글자를 뺀 일이 있었는데, 朱子는 그 곡절을 周益公에게 논하면서 ‘구양수范仲淹이 進退를 합당하게 하지 않았다고 여겨서 그리 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럴 수 있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白洞의 李先生[晴暉堂] 告由文은 定憲公[李源祚]가 지은 것인데, 李氏들이 한을 품은 대상은 어슨 말이고 무슨일에 치욕스러워 하는지 모르겠다. 大浦里[星山李氏家]에서 책판을 간행하고 중간할 때 李氏들은 한 명도 와보지 않고 한 마디도 없다가, 책을 頒行한 후에 刊板을 훼손하고 문집을 도려냈다. 이는 范仲淹 墓碑에서 ‘忠宣’이라는 글자를 깎아 낸 고사를 갖다 붙일 수 없는 일이다." 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李載儀李鳳宇의 잘못을 지적하고, 매우 분개하고 있다. 星州 鄕校 어르신들에게 죄를 성토해야 한다고 하고, 더불어 儒案이 더러워지지 않게 이름을 삭제해야 한다고 하였다.
본 通文에 연명한 사람은 李以漢, 李禧淵을 비롯한 46명이다. 鹿峯書堂은 1561년(明宗 16)에 퇴계 이황의 高弟인 黃俊良이 성주 목사로 부임했을 때 鹿峯寺터에 지은 것이다. 19세기에 중수하여 講學기능을 수행했으나, 2009년의 화재로 현재는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창평리에 그 터만 남아 있다.
1차 작성자 : 명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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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97년 칠곡(柒谷) 녹봉서당(鹿峯書堂) 통문(通文)

通文。
右文爲通告事。昔歐陽公撰范文正碑。而忠宣潛去數語。朱子答周益公論范碑曲折。書曰。爲忠宣者正當貽書。
歐公以爲進退若終不合。則引義告絶。其亦可也。乃不出此。直於成文之中刋去數語。未知此爲何等擧措。今白洞
氏先院告由文。卽大浦 定憲公所製。而未知李氏之所恨怨者在何語。所恥辱者爲何事。大浦之刊板也重印也。爲李
氏者。無一人來觀無一言相及。乃於頒行之後。毁破刊板。刀割文集。於乎范忠宣之潛刋墓碑不少假借者。此蓋責備之語。
其於白洞李鳳宇李載儀等。雖非擬議之地。然烏可以其人之不若棄置。而不爲之聲討哉。如使紫陽公筆秉法義而
裁之。則雖從末減之科。斷不厠於士君子之林。生等居在隣鄕。事係儒林。聞此極變。義不敢終始泯默。玆敢發文通告。
伏惟。貴鄕卽 先正舊邦。而遺風餘韻猶尙未泯。其於右文聲罪之擧。自當有別。望須 僉君子齊聲共討。使
輩無染儒案。不齒士類之地。幸甚。
丁酉正月初十日。幼學李以漢 李禧淵 李海麟 李相卨 李以鑽正言姜濬永 幼學權哲奎 李學淵 李垤 李徽淵 李以壽
李秀東 李相奭 李能淵 琴錫希 尹志學 李晉煥 李相翼 琴錫薰 李元燮 李元奭 李相驥
正言姜運馨 幼學李相龜 李載厚 尹在學 李相斗 朴善東 李鼎煥 進士李章淵 幼學盧鍾泰 姜時馨 李載心 李以翊
注書李相標 幼學李龜淵 李周厚 李在榮 尹炳達 李壽泳 李徹淵 李相參 李來煥 李珽煥 李汶植 琴海圭 等。

[피봉]
星州鄕校 檜淵 月川。
柒谷鹿峯書堂通文。
[피봉]
丁酉正月初十日。 謹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