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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7년 이원조(李源祚) 문집 훼판(毁板) 사건 성토(聲討) 통문(通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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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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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사회-조직/운영-통문
작성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형태사항 크기: 21 X 67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관련자료

안내정보

1896~7년 이원조(李源祚) 문집 훼판(毁板) 사건 성토(聲討) 통문(通文)
이원조(1792~1872)의 문집과 훼판 사건의 범인인 이재의이봉우를 성토하기 위해 작성한 통문이다. 발급시기와 발급 수취자가 적혀있지 않다. 성산이씨 가문에는 이 당시(1896~1897년)에 각지의 향교 등 단체에서 보낸 13건의 통문이 전해지고 있는데, 모두 이재의이봉우의 잘못을 성토하고 처벌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본 통문의 초본도 이때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1차 작성자 : 명경일

상세정보

李源祚(1792~1872)의 문집 훼판 사건의 범인인 李載儀李鳳宇를 성토하기 위해 작성한 通文.
李源祚(1792~1872)의 문집과 훼판 사건의 범인인 李載儀李鳳宇를 성토하기 위해 작성한 通文의 초본이다. 발급시기와 발급 수취자가 적혀있지 않다.
星州에 있는 星山李氏 가문의 인물인 李源祚는 조선후기 노론 집권기에 남인으로서는 드물게 1품의 반열에 올랐고, 학문적으로는 영남 주리론 계열의 대표적인 학자였다. 그의 사후 凝窩先生文集을 간행했다.
그런데 이 문집에 실린 문구에 불만을 제기하여 소란을 피운 사건이 일어났다. 즉 白洞에 사는 晴暉堂 李承(1552~1596)의 후예인 李載儀李鳳宇가 문집안에서 晴暉堂을 ‘公’으로 칭한 것에 불만을 품고 강제로 冊板을 훼손한 것이다. 李承(1552~1596)의 본관은 全州이고, 행적이 國朝人物考에 실려 있는 인물이다. 실제 凝窩先生文集을 보면 ‘新溪書院追享時告由文’이란 글이 있다. 여기서 ‘公과 師友들은 덕을 갖추어 행실이 온전했고[公維師友 德備行全]’라는 구절에서 李承을 ‘公’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星山李氏 가문에는 이 당시(1896~1897년)에 각지의 향교 등 단체에서 보낸 13건의 통문이 전해지고 있는데, 모두 李載儀李鳳宇의 잘못을 성토하고 처벌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본 통문 초본도 이때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1차 작성자 : 명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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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96~7년 이원조(李源祚) 문집 훼판(毁板) 사건 성토(聲討) 통문(通文)

通文。
右文爲聲討事。嗚呼。世降道裂。斯文日
湮。門墻之內。怪變肆起。貴鄕白洞李氏之
妄行胸臆之私於浦上梓板者。是已竊伏
聞。其由以新溪祠告由文不稱先生於晴暉堂。
爲尊祖侮賢之資。有此悖妄之擧云。噫是
怨其祖之不能及於前古大賢。而責先哲之不自
曲意循物也。鄙生等後學蔑識於晴暉翁之
言論風旨。縱未承其一二緖餘。今以祝詞之所
稱道贊揚者。于可象夫晴暉翁之爲晴暉
翁。而尤不勝高山景行之懷也。蓋昔乞文諸公。以今
日觀之。則應是自家之祖先。何其都無聞知。不一
言於濡筆之際。而自有待於後人耶。多賀夫晴暉
古家能有此佳子孫闡揚祖美。無所不用其極
也。雖然凝翁之文章。德業巍然。爲吾儒之宗匠者。
亦幾乎百年所矣。夫其遺文之壽諸梓而傳之
後。非一人之私好。乃成於十數年公議積鬱之餘。
而此書之出。凡有慕道之心者。咸惜其晩矣。未聞
有一毫輕侮之者也。惜乎其巖廊黼黻之箴。州
郡拯救之奏。晩亭講負之編。前誌表顯之筆。
今一朝而不幸見毁於無賴之毒手。尙此忍言
哉。此尙忍言哉。想其當場光景。特甚於畵墁之
狂。嗟我斯文厄會不下於斷膂之慘。此而不討。
何以尊衛。且夫大嶺以南洛之左右。冠其儒而
談乎。學者何人非請業之後裔弁于卷而鎸
之石者。誰家無傳信之法文。伏願僉君子。勿以
區區鄕井之好。廢吾黨扶斤之義。千萬幸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