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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지례(知禮) 성산이씨(星山李氏) 문중인(門中人) 통문(通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6+KSM-XF.1896.4715-20140630.E4784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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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사회-조직/운영-통문
작성주체 성산후인, 성주향교
작성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작성시기 1896
형태사항 크기: 70.5 X 56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관련자료

안내정보

1896년 지례(知禮) 성산이씨(星山李氏) 문중인(門中人) 통문(通文)
1896년 12월 10일, 응와 이원조(1792~1872)의 문집과 관련된 사건으로 지례 삭동에 사는 성산이씨 문중 사람들이 성주 향교에 보낸 통문이다. 성산이씨 가문에는 이 당시(1896~1897년)에 각지의 향교 등 단체에서 보낸 13건의 통문이 전해지고 있는데, 모두 이재의이봉우의 잘못을 성토하고 처벌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본 통문에서는 이재의이봉우이 문집을 칼로 자르고 잘라버린 행동은 학문하는 사람의 예(禮)가 아니며 선조를 높이는 것도 아니라고 하고 있다. 이어서 이들을 죄를 일제히 성토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명경일

상세정보

1896년 12월 10일, 凝窩 李源祚(1792~1872)의 문집과 관련된 사건으로 知禮 朔洞에 사는 星山李氏 문중 사람들이 星州 鄕校에 보낸 通文.
1896년 12월 10일, 凝窩 李源祚(1792~1872)의 문집과 관련된 사건으로 知禮 朔洞에 사는 星山李氏 문중 사람들이 星州 鄕校에 보낸 通文이다.
星州에 있는 星山李氏 가문의 인물인 李源祚는 조선후기 노론 집권기에 남인으로서는 드물게 1품의 반열에 올랐고, 학문적으로는 영남 주리론 계열의 대표적인 학자였다. 그의 사후 凝窩先生文集을 간행했다.
그런데 이 문집에 실린 문구에 불만을 제기하여 소란을 피운 사건이 일어났다. 즉 白洞에 사는 晴暉堂 李承(1552~1596)의 후예인 李載儀李鳳宇가 문집안에서 晴暉堂을 ‘公’으로 칭한 것에 불만을 품고 강제로 冊板을 훼손한 것이다. 李承(1552~1596)의 본관은 全州이고, 행적이 國朝人物考에 실려 있는 인물이다. 실제 凝窩先生文集을 보면 ‘新溪書院追享時告由文’이란 글이 있다. 여기서 ‘公과 師友들은 덕을 갖추어 행실이 온전했고[公維師友 德備行全]’라는 구절에서 李承을 ‘公’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星山李氏 가문에는 이 당시(1896~1897년)에 각지의 향교 등 단체에서 보낸 13건의 통문이 전해지고 있는데, 모두 李載儀李鳳宇의 잘못을 성토하고 처벌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星山李氏 문중 사람들은 李載儀李鳳宇의 행동을 다음과 같이 성토하고 있다.
우선 ‘先生’이라고 칭하거나 ‘公’으로 칭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먼저 그 位가 先生에 있으면 어찌 先生이라고 하지 않고 公이라고만 칭했겠으며, 그 體가 賢公하면 어지 公이라 하지 않고 先生의 禮로 대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리고 朱子도 子瀜方叔은 ‘二公’이라고 말했고, 南湖方山은 ‘兩先生’이라고 높였던 것이다. 따라서 定憲公[李源祚]이 晴暉堂을 위해 지은 글에서 先生이라고 하지 않고 公이라고 한 것은 그를 趨向하는 뜻을 모르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李載儀李鳳宇는 鄭重한 文字만 생각하고 문집을 칼로 자르고 잘라버린 행동은 학문하는 사람의 禮가 아니며 선조를 높이는 것도 아니라고 하고 있다. 이어서 이들을 죄를 일제히 성토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본 通文에 연명한 사람은 李秉浩, 李章柱을 비롯한 20명이다.
1차 작성자 : 명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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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96년 지례(知禮) 성산이씨(星山李氏) 문중인(門中人) 통문(通文)

通文。
右文爲通告事。伏以。人之趨向行義。自有早白。文之搜索。條理當有輕重。而位在先生。則何不曰先生而只以公稱之。
體爲賢公。則何不曰公而豈以先生禮也。昔 朱夫子論子瀜方叔。而以二公言之。答南湖方山。而以兩先生尊之。公之
於先生。其意大有不同焉。族大父故判書定憲公之文學義理。爲晴暉堂所制文字不曰先生而曰公。豈不知
趨向之意而然也哉。噫彼李載儀李鳳宇。都不知鄭重文字。特敢生唐突氣習。穿入先亭刀割文集。是豈爲
學之禮也。亦豈尊祖之道耶。且 貴鄕與他邑異也。先賢之立言垂訓遺風餘韻。庶爲標準。而如此悖
類從何以萌乎其間也。伏願。僉尊齊聲討罪。共扶斯文之地。甚甚幸幸。
右文通于
星州校中。
丙申十二月十日。星山後人 李秉浩 李章柱 李讚浩 李鶴柱 李榮柱 李相燦 李達柱 李麟燦 李元浩 李元培 李慶柱 李希柱 李孟燦 李東浩 李仁浩 李龍燦
李景浩 李盛柱 李景燦 李根培 等。

[피봉]
星州鄕校 入納。
知禮朔洞通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