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4년(哲宗 5) 4월 14일에, 安東府使가 東後面 道谷洞의 里任에게 발급한 山訟 관련 傳令.
1854년(哲宗 5) 4월 14일에, 安東府使가 東後面 道谷洞의 里任에게 발급한 山訟 관련 傳令이다.
固城李氏 문중은 陶谷里(道谷里 현재 예안면 인계리)에 있는 문중 묘역을 두고 寧海의 權氏 문중과 분쟁을 벌였다. 이 분쟁은 端宗의 외할아버지인 權專(1371~1441)의 묘소가 固城李氏 문중 묘역 안에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인데, 1735년부터 시작되어 1854년까지 1백여 년 동안 계속되었다. 이와 관련된 문서로 현전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괄호 안은 작성 시기에 따라 부여한 번호임)
1736년에 작성된 所志 3건(①,②,④) 議送 1건(③) 決訟立案 1건, 1782년에 작성된 所志 2건(⑤,⑥) 1809년에 작성된 所志 1건(⑦) 表文 1건(⑧), 1842년에 작성된 上書 1건(⑨), 1847년에 작성된 所志 1건(⑩) 議送 1건(⑪), 1854년에 작성된 所志 1건(⑫), 傳令 1건(⑬-본 문서)이다.
寧海에 사는 權{火+貞} 등이 묘역의 松楸 문제로 소송을 일으키고 수령의 傳令을 받아와서 협박하자, 固城李氏 문중은 所志를 몰려 변론한 바 있다.(⑫문서) 이 所志에 대해 安東府使는 傳令을 환수한다는 처결을 내렸고, 이 傳令은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
傳令의 본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本府에 살고 있는 李廷百의 訴狀을 보았다. 여기에 ‘寧海의 權{火+貞}등이 그들의 先山으로 守護하고 있는 松楸를 橫奪당했다는 말로 誣訴했고, 전령까지 받아갔다. 이는 前後의 소송의 決案에 나타나 있다. 전령을 환수해 달라.’ 라고 하였다. 이 공문을 보니, 權氏가 誣訴하고 傳令을 받아간 것은 너무 간악하다. 傳令을 환수하라. 權氏가 이후에 이로 인해 또 분란을 일으키면 너 里任과 李氏는 함께 소송하여 엄히 처벌할 수 있도록 하라." 라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명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