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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경주향교 첩유(帖諭)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1+KSM-XC.1909.4713-20090831.Y0910105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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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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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통유
내용분류: 정치/행정-명령-통유
작성주체 이기, 경주군, 경주향교
작성지역 경상북도 경주시
작성시기 1909
형태사항 크기: 20 X 29
수량: 1면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한글
소장정보 원소장처: 경주 경주향교 /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17-1 문중소개

관련자료

안내정보

1909년 경주향교 첩유(帖諭)
1909경주군에서 경주향교(慶州鄕校)협성학교(協成學校)의 운영자금을 부과한 공문이다. 1906대구광역시에 근대식 사립학교인 협성학교가 설립되자 관찰사(觀察使)는 각 군에 명을 내려, 향교에서 보조금을 거두어 협성학교 운영자금에 지원할 것을 명하였다. 그리고 경주군에서 이 지시를 받아 경주향교에 50원의 보조금을 납부케 한 것이다. 당시 이러한 일제의 정책은 각 고을에 소재한 향교의 재정적 운영을 크게 위축시켰으며, 지역 양반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었다.
이광우

상세정보

1909경주향교에서 보조금을 거두어 大邱協成學校의 운영자금에 충당할 것에 대해 경주군에서 경주향교로 내린 帖諭
내용 및 특징
慶州鄕校에 소장되어 있었던 것으로 「各公文編纂綴」이라는 제목으로 영인된 고문서(23건) 중의 하나이다. 이 문서에는 경주향교의 재산 일부가 大邱協成學校의 운영자금으로 충당되는 사례를 볼 수 있다. 협성학교1899년 설립된 日語學校인 達城學校1906년 명칭이 변경된 것으로 대구광역시의 근대식 사립학교이다. 협성학교경상도 내의 各郡으로부터 찬조금을 받아 운영되고 있었는데, 이때 관찰사의 面諭에 따라 각군에 있는 鄕校로부터 보조금을 모아 협성학교의 운영 자금으로 충당하였다. 이 문서는 이 당시 관찰사의 명을 받아 경주군수李琦경주 내 士林의 의견을 모으고, 경주향교가 할당 받은 50円의 보조금을 모금하여 내는 것에 대해 경주향교로 내린 첩유이다. 이 당시 향교재산에 대한 재무감독국의 이러한 운영지침은 향교를 기반으로 한 지역 유림의 반발을 초래하였다. 그러나 이미 재무감독국 하에 재정을 장악당하고 있던 향교는 당국의 명에 따라 향교의 재산 중 일부를 근대식 사립학교 운영 자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었다.
자료적 가치
일제강점기 전후, 국권회복을 위한 유림활동의 근거지였던 향교를 어떻게 일제가 압박했는지 살펴 볼 수 있다. 아울러 대구광역시지역의 근대식 학교였던 協成學校의 운영 양상과 인근 지역 향교와의 관계를 파악 할 수 있는 자료이다.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이광우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09년 경주향교 첩유(帖諭)
帖諭第五八号
大邱協成學校剙建以來로孰不無贊成
之美而永遠히維持기爲야道下各郡
이捐金輔助고觀察使閤下께압서
且有申勤面諭이온바以本郡鄕中으로
言之즉五十円請助가元非夥然之額이
어늘尙無區劃야該校公函이至有存
到니其曰補助之地에以不可遷延打
過이게玆庸帖諭니贊校的思想으
로受議於一鄕士林야該金額五十円
을從速措劃야不日上送케이可할事
隆熙三年三月二日
郡守李琦[印]
鄕校御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