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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경주군수가 경주향교에 내린 첩유(帖諭)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1+KSM-XC.1908.4713-20090831.Y091010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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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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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첩
내용분류: 정치/행정-명령-첩
작성주체 이기, 이정구
작성지역 경상북도 경주시
작성시기 1908
형태사항 크기: 29 X 20
판본: 필사본
장정: 선장
수량: 23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한글
소장정보 원소장처: 경주 경주향교 /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17-1 문중소개

관련자료

안내정보

1908년 경주군수가 경주향교에 내린 첩유(帖諭)
관리를 소홀히 하여 경주의 역사를 최초로 기록한 동경지의 원판 24면을 분실하고 이를 찾지 못하고 있으니 이를 보완하여 간행 하려고 경주군수이기가 향교재임 이정구에게 그 자금을 모금하고 이에 부조한 인원의 명단과 금액을 보고하라고 내린 첩유이다.
이병훈

상세정보

1908년 경주군수가 향교재임에게 동경지 보완을 위하여 내린 첩유(帖諭)
各公文編纂綴帖諭
내용 및 특징
관리를 소홀히 하여 경주의 역사를 기록한 東京誌의 원판 24면을 분실하고 이를 찾지 못하고 있으니 이를 보완하여 간행 하려고 경주군수이기가 향교재임 이정구에게 그 자금을 모금하고 이에 부조한 인원의 명단과 금액을 보고하라고 내린 첩유이다. 최초의 동경지현종 10년(1669)부사민주면이 읍유 이채·김건준 등에게 의뢰하여 동국여지승람을 바탕으로 하고 삼국사기, 파한집, 삼국유사, 고려사, 동국통감, 서악지, 동사보유, 선생안 등을 참고하여 纂成, 간행한 것으로서 이후 여러 경주지의 근간이 되었다. 숙종 37년(1711)부윤남지훈이 중간하였으며, 동왕 38년(1712)부윤권이진이 刊誤를 부록하였고, 다시 헌종 2년(1845)부윤성원묵김자수, 손소, 손중돈, 손화, 최진립, 한기 등의 사적을 整改 添補하여 간행하였다. 1908년에 논의된 동경지 보완작업의 결과는 알 수 없지만, 1933년정인선·최남선 등이 동경통지를 편찬하고 경주향교에서 간행하였다는 사실을 통해 경주향교에서 편찬 자금의 모금이 원활치 않아 20여 년이 지난 후에 내용을 더욱 철저히 고증하여 간행한 것으로 추측된다.
자료적 가치
근대 읍지 편찬에 있어서 지방관청의 역할과 과정을 유추할 수 있는 자료이다.
『地方誌 一 -慶州誌 ①-』, 「慶州誌 小考」, 李哲敎, 아세아문화사, 2006
『慶北鄕校資料集成(Ⅰ)』,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영인본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이병훈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08년 경주군수가 경주향교에 내린 첩유(帖諭)
帖諭
昔者子雲이讀史曰不有遺編이면無以記古
人이라고王儉이選史曰諸子志라야以記古
今諸子니是는尙友古人也라故로本郡之有
東京誌가乃是東都一卽史記也라歷自羅
麗로庙我
聖朝히 邦國之興替寶鑑이며 諸家之祖先
傳集이 莫不章〃可換즉可謂前人之述이
備矣라實合寶而蔵之▣刊而穡之어늘十叛
年來로 改府爲郡에 百度减省야公廨
物을不維保管不勤이라實是責任無人이은
况視今郡內各▣이盡是鳩居라轉移之際에
跋此東京誌之原板紛失이不知在扵何日何時
나今果搜覓죽無有者爲二十四頁也라苟不汲
〃補刊이면不但處員前人備無라難免後人之
嘲詈이기發에帖諭니湏卽提議會席야
時急募金이되損助人員金額을卽爲報來事
隆熙二年五月二十二日
郡守李琦 (印)
鄕校齋任李正久 座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