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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榮州) 풍기향교(豊基鄕校) 소장 백고리사(白皐里社) 『병오12월시 잡록(丙午十二月始 雜錄)』 수록 1784년경 「안동삼계서원통문(安東三溪書院通文)」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10+KSM-XG.1784.4721-20180630.Y1821907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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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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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내용분류: 교육/문화-서원/향교-고왕록
작성주체 백고리사, 삼계서원, 오계서원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작성시기 1784
형태사항 크기: 24.5 X 25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주 풍기향교 /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현소장처: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 경상북도 경산시 대동

관련자료

안내정보

영주(榮州) 풍기향교(豊基鄕校) 소장 백고리사(白皐里社) 『병오12월시 잡록(丙午十二月始 雜錄)』 수록 1784년경 「안동삼계서원통문(安東三溪書院通文)」
1784년(정조 8)경 경상도(慶尙道) 안동부(安東府)삼계서원(三溪書院) 사림이 경상도 영천군(榮川郡)오계서원(?溪書院)에 보낸 통문(通文)으로 추정된다. 이 통문은 풍기향교(豊基鄕校)에서 엮은 『병오12월시 잡록(丙午十二月始 雜錄)』에 수록되어 있다. 풍기향교에는 모두 4책의 잡록이 전하는데, 본 잡록은 풍기향교 관련 기록이 아니라 백고리사(白皐里社)의 것이다. 통문에서 삼계서원 측은 풍기군(豊基郡) 출신의 유학자 단곡(丹谷) 곽진(郭??)[1568~1633]을 제향(祭享)하는 추모시설 건립에 대하여, 동조와 격려의 뜻을 밝혀 놓았다.
곽진은 비록 풍기군 출신이었지만, 조선후기 선현(先賢)의 서원(書院) 또는 사우(祠宇) 제향이 사림의 공론에 의거해 이루어졌던 관계로, 삼계서원 측이 본 통문을 발급하여 호응하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1786년(정조 10) 12월 곽진을 제향하는 백고리사풍기군에 설립되었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資料集成』(Ⅱ),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상세정보

1784년경 慶尙道 安東府三溪書院 사림이 豊基郡 출신의 유학자 郭𡺽을 祭享하는 일로 榮川郡迃溪書院 측에 발급한 通文
丙午十二月始 雜錄
자료의 내용
1784년(정조 8)경 慶尙道 安東府三溪書院 사림이 榮川郡?溪書院 측에 발급한 通文으로 추정된다. 이 통문은 경상도 豊基郡 豊基鄕校에 소장되어 있는 『丙午十二月始 雜錄』에 수록되어 있다. 풍기향교에는 모두 4책의 잡록이 전하고 있는데, 본 잡록은 풍기향교 관련 기록이 아니라, 白皐里社의 것이다. 본문에 발급 연도는 기재되어 있지 않은데, 이 통문 바로 앞에 수록된 1786년(정조 10) 12월 기사에 따르면, 풍기군 출신의 유학자 丹谷 郭??[1568~1633]을 祭享하는 일로 1784년(정조 8) 봄 영천군오계서원에서 道會가 개최되었고, 이 일에 대한 동의를 얻고자 오계서원 측이 도내 여러 향교와 서원에 통문을 발급하였으며, 이후 삼계서원이 통문을 보내왔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미루어 볼 때 본 통문은 1784오계서원이 발급한 통문의 답통으로 보이고, 발급 연도도 같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곽진을 제향하는 사우는 1786년 12월 백고리사라는 이름으로 풍기군에 설립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통문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통문에서는 먼저 단곡 곽진 선생의 節行은 이미 드러나 있고, 德業은 웅대한 관계로 마땅히 제향드리는 장소가 있어야 하나, 지금 까지 100여 년 동안 公議조차 발의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해 놓았다. 그래서 자신들은 매번 옛 선배들의 일을 평론할 때마다, 분개하고 슬프게 여기고 있는 바라고 하였다. 그런 가운데 貴鄕의 章甫들이 먼저 祭社와 ?享의 거행을 선창하여 통문을 돌렸으니, 무릇 우리 嶺南의 사림 가운데 欽仰하지 않는 자는 없다며, 곽진 제향에 대한 동조의 뜻을 밝히고 있다. 이어 곽진의 道學과 名節은 이미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으며, 은거하는 동안 높은 격조와 멋이 당대에 드러났고, 문장의 호연한 기운은 遺篇에 빛나고 있어, 후인이 矜式으로 삼으며 愛慕하는 바라고 하였다. 통문 말미에는 誠心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으니, 빠른 시일 내에 遠近의 장보가 우러러 볼 수 있도록 곽진의 제향을 성사시켜 줄 것을 당부해 놓았다.
자료적 가치
조선후기 선현을 제향하는 院祠의 설립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이 무렵 추모 시설인 서원·사우의 설립과 선현의 제향은 사림의 공론에 의거해 결정되었다. 곽진풍기군 출신의 유학자인데, 그를 제향하는 사우를 설립하기 위해, 인근 영천군오계서원안동부삼계서원 사림이 통문을 주고받은 사실은 이 사안이 사림의 공론에 의거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朝鮮後期鄕校硏究』, 尹熙勉, 一潮閣, 1990
『慶北鄕校誌』,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慶尙北道, 1991
『韓國의 鄕校硏究』, 姜大敏, 慶星大學校 出版部, 1992
『慶北鄕校資料集成』(Ⅱ), 嶺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嶺南大學校 出版部, 1992
1차 작성자 : 이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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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東三溪書院通文
生等竊伏念丹谷郭先生節行之表著德業之宏偉宜有俎
豆揭虔之所而?今百有餘年尙未有公議之敦發生等每
於尙論先輩之際竊爲之慨然傷歎矣?者伏聞貴鄕章甫
首先唱發將有祭社?享之擧凡爲吾士林者孰不欽仰
而齊聲也哉先生之道學名節已是世人之所共知者而第想
其林泉高趣山斗於當時文章浩氣?璨於遺篇則其
爲後人之矜式而愛慕者尤有所不自已焉者也自今
以往諸賢不孤之德大有光於斯文而僉尊象賢之
擧亦可見君子好德之誠心伏願僉君子?擧縟儀
使遠近章甫?伸高山景仰之思不勝幸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