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1년에 館洞에 사는 李斗勳이 高靈 관아에 올린 산송 上書
1881년(고종 18) 윤7월에 高靈 館洞에 사는 李斗勳이 관아에 올린 산송 上書이다. 李斗勳은 1880년 7월부터 高靈 玉山에 있는 親山을 두고 부근에 거주하는 成致瑞와 산송을 벌이고 있다. 1881년(고종 18) 윤7월에 올린 上書까지는 본인을 ‘星州 雲山의 制民’이라고 칭하고 있지만, 윤7월부터는 ‘館洞의 制民’ 또는 ‘化民’으로 칭하고 있다.
소지 우측 일부가 결락되어 있다. 남아 있는 부분을 보면, 李斗勳은 소지 본문에서 다음과 호소하였다.
"저는 玉山에 있는 先妣 산소의 腦後에 있는 成致瑞의 偸塚에 관한 일로 지난달에 호소하여, 가을에 다시 소송하면 엄명하게 처결할 것이라는 처분을 받았습니다. 成씨가 은혜를 저버리고 적반하장하며 偸塚이 매우 가까이에서 腦後를 압박하는 상황을 閤下께서 이미 통촉하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하면 애통하고 심히 뼈를 깎는 듯하여 더는 시일을 끌 수 없을뿐더러, 이미 가을에 다시 소송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제 가을이 깊었고 농사일이 한가로우니 지금이 그때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상과 같이 이미 가을이 깊었으니 소송을 제기할 시기임을 주장하고는, 成致瑞를 잡아다가 무덤을 督掘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대한 처분은 29일에 내렸는데, "가을걷이가 한참 성하다. 물러나 기다려라."라고 하였다.
朝鮮時代 明文에 관한 文書學的 硏究, 김성갑,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4
1차 작성자 : 유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