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4년 상주목사(尙州牧使) 완문(完文)
1814년 10월에 상주목사가 옥동서원의 원생을 다른 사액서원의 사례에 의거하여 60명까지 모집할 수 있도록 허가한 완문이다.
완문의 내용을 보면 옥동서원은 익성공 방촌 황희을 제향하는 곳으로서, 아울러 황희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임금이 지극한 은혜를 베풀어서 사액을 하였는데, 이것은 조정의 은혜를 갚는 바이며, 사림이 존경하여 높이 받드는 바라고 하였다. 또한 다른 곳과는 다르고 특별한 까닭에 이전에는 서원을 지키어 보호하는 원생이 거의 100명이 있었다. 이후 문제가 많아서 대폭 감원이 되어서 남은 수는 보잘 것 없었는데, 아무래도 사액 서원의 엄중함과 영당을 지키는 도리가 아니라고 보았다. 이에 곰곰이 생각하여 옥동서원의 옛 원생안을 참고하고, 다른 사액서원의 사례를 본떠서 60명으로써 원생안을 작성하여 더하는 것이니, 이후 본래의 정수 내에서 다른 역으로 옮겨 보내어서는 안 되고, 비록 훈련도감, 어영청의 군사로 상번할 때에도 결코 침탈하지 말고 걸러내어 영구히 ㅤㅉㅗㅈ아서 행하도록 마땅히 할 일이라고 하였다.
한편 본 완문을 성급한 자는 1814년 새로 상주목사로 부임한 김기헌이었는데, 그는 황희의 외 후손이었다. 그렇기에 황희를 제향하는 옥동서원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부임할 당시 서원에 들러 알묘하였다. 그 당시 옥동서원의 경제력이 조잔하여 서원 운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확인한 후 특별히 60명의 원생을 더하여 정원을 채워서 부리도록 완문을 발급하였던 것이다. 이후부터 60명의 원생들이 납입하는 비용이 옥동서원의 모든 일의 진행에 있어서 밑천이 되었음은 현전하는 각종 상서와 품목 등에서 확인된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