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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상주 옥동서원(玉洞書院) 품목(稟目)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8+KSM-XC.1848.4725-20160630.Y16502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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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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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품목
내용분류: 사회-조직/운영-품목
작성주체 옥동서원, 상주목사
작성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작성시기 1848
형태사항 크기: 60 X 48.5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상주 옥동서원 /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상주 옥동서원 /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관련자료

안내정보

1848년 상주 옥동서원(玉洞書院) 품목(稟目)
1848년 2월에 옥동서원 원장 이규석과 재임 김중섭, 황형주상주목사 이상두에게 서원 소속 옥동리지장리에 거주하는 가속들의 환상미을 제급해주길 요청하는 품목이다. 옥동서원의 원임들은 서원촌을 보호하는 일로 이전에도 품목을 올려서 백성들이 차별받지 않고 환곡을 받도록 제음을 받았었다. 당시 옥동서원에서는 약간의 가속들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환곡을 제급 받지 못하자 모였던 이들이 다시 흩어지게 되었다고 품목을 통해 상주목사에게 하소연하였다. 나아가 옥동서원은 감영의 제영과 완문에 따라 원속을 모으는 것보다 가속들의 생활을 안정화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하여, 상주목사가 해당 창고지기에게 절목을 내려 가속들이 환상미를 제급받을 수 있도록 조처해 주길 요청하였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848년 2월에 玉洞書院 院長 李奎錫과 재임 金重燮, 黃馨周尙州牧使 李象斗에게 서원 소속 玉洞里芝庄里에 거주하는 假屬들의 還上을 除給해주길 요청하는 稟目
1848년 2월에 玉洞書院 院長 李奎錫과 재임 金重燮, 黃馨周尙州牧使 李象斗에게 서원 소속 玉洞里芝庄里에 거주하는 假屬들의 還上을 除給해주길 요청하는 稟目이다. 옥동서원의 원임들은 院洞을 完護하는 일로 품목을 올렸다. 본문에 기재한 題音을 통해 이전에 다른 품목을 올렸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당시 제음에서 還穀이라는 것은 국가에서 곡식을 균등히 지급하는 것으로 이 나라의 백성으로서 어떤 백성은 곡식을 받고, 어떤 백성은 그렇지 않은가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즉 모든 백성들에게 고르게 환곡을 나누어 주라는 명이 있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이러한 조처로 商民이라 하더라도 누구도 감히 贊頌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옥동서원의 가장 절박한 바는 간신히 서원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서원에 원래 전해오는 院屬이 없었고, 약간의 假屬은 어중이떠중이라서 괴롭다고 하였다. 가속들은 번거롭고 까다로운 일이 일어나면 흩어질 생각을 품은 까닭에 여러 차례 품목을 올려서 다행히 감영에서 除役하는 完文을 받아서 가속배들에게 직접 제역하는 완문을 보여줌으로써 다들 의지하여 간신히 지탱하여 보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완문을 보고 모의하여 숨으려는 자가 서원에 자원하여 들어오고, 흠향하는 것에서 떨어져 흩어지려는 자들이 돌아와 합쳐서 모두 말하기를 우리 어진 제후의 덕이며, 우리 어진 제후의 은혜라 하여 큰 가뭄에 단비가 내리고, 큰 추위에 따스한 봄과 같다고 칭송 하였다. 하지만 환곡을 나눠주는 날에 이르러 사람들에게 제급하라는 완문이 있었지만, 제급의 실효를 보지 못하자, 서원에 들어오기를 희망하였던 나머지가 마음을 버려서 들어오길 원하던 자들이 다시 돌아가 숨고, 돌아와 합친 자들은 다시 흩어졌기에 院屬을 채워서 서원을 보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탄하였다. 그러면서 원속이 부족하여 서원을 운영하기 어려운 것이 옥동서원의 가장 크고 절박하며 심각한 것이라고 하였다. 품목에서는 옥동리지장리옥동서원의 가속들이 거주하는 마을이며, 하천 아래의 한 동네는 스스로 옥동서원의 소속으로 들어왔기에 곧 여러 가지 역을 제외시켜주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생각건대 감영의 제문과 완문에 의거한 것은 다음번에 시행하고 우선 옥동리와 지장리에 還上米를 제급해준 후에 약간의 가속 무리로 지탱하여 보존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이것은 감영의 완문에 원속을 모입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지만 원속들에게 혜택이 없으면 그들을 모아도 곧 흩어져 버리기에 무용지물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기에 옥동리와 지장리에 사는 가속들에게 환곡을 제급하는 것이 그들의 도산을 막고 다른 이들을 끌어들이는 최선이라 보았던 것이며 그것이 사액서원을 전수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렇기에 감영의 제음이나 완문뿐만 아니라 옥동서원을 수호하려는 감영의 의지를 따라서 상주목사가 해당 창고지기에게 節目을 성급하여 해당 院洞에 환곡을 제급해 주길 요청하였다. 그로인해 약간의 假屬을 얻어서 서원을 지탱하고 보존하는데 부리도록 함으로써 사액 서원이 전수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원하고 있다. 이 품목을 통해 옥동서원의 시급한 과제는 원속의 확보를 위한 除役뿐만 아니라 그들의 안정적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갖춰야 됨을 알 수 있다.
자료적 가치
이 품목은 옥동서원이 원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고을 수령의 도움으로 부족한 재원을 확보하고, 보호하는 과정을 상세히 알려주는 자료이다. 이외에도 연계된 품목, 상서, 완문 등이 남아있어서 19세기 초반 사회·경제적 위기 속에서 옥동서원의 대응 방안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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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稟目
右稟爲頃以院洞完護事有所仰稟矣 題敎內有曰還穀卽 國穀均是 國之民而何
民受食何民不食乎云云我 賢侯一視之政凡爲商民者孰敢不贊頌而第本院大有所切迫
難保之端何者本院元無由來院屬若于假屬無非烏合之卒苦其煩苛擧懷謀散故累
度呈稟幸蒙 營邑除役之完文假屬輩親見除役之完文以爲自今以後庶有支保
之望昔之謀避者願入嚮之離散者復合咸曰我 賢侯德也我 賢侯賜也有若大旱
之甘霈大寒之陽春矣迨予分還之日徒有除給之完文而未見除給之實效故顯
望之餘擧懷落莫願入者還避復合者還散至於莫可鎭保之境此豈非本院一大切迫
之甚者予大抵玉洞里及芝庄里卽本院假屬所居之里也川下一洞自來本院所屬則各項
除役伏想依 營題依完文次第施行而爲先玉洞里芝庄里除給還上然後如干假
屬庶有支保之望而莫重額院始有典守之道矣竊伏念 營門之題敎不翅丁寧
營門之完文不翅勤至則伏願 閤下仰體 營意卽爲成給節目於該倉色除給
還穀於該院洞使如干假屬得以支保而莫重額院得有典守之地千萬祈懇之至謹稟
戊申二月 日玉洞書院院長李[手決]
齋任[手決]
[手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