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799년 4월 27일 주서(注書) 류이좌(柳台佐) 전교축(傳敎軸) - 비답(批答)4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9+KSM-XA.1799.0000-20170630.KSAC008127500003_5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교령류-비답
내용분류: 국왕/왕실-교령-비답
작성주체 국왕
작성시기 1799
형태사항 크기: 33.5 X 61.5
장정: 낱장
수량: 3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하회 풍산류씨 화경당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관련자료

안내정보

1799년 4월 27일 주서(注書) 류이좌(柳台佐) 전교축(傳敎軸) - 비답(批答)4
1799년(정조 23) 4월 27일, 전 이조판서 이시수(李時秀)의 상소에 대한 국왕의 비답이다. 이 비답은 당일 입직한 주서인 류이좌가 편철해 놓은 전교축에 포함되어 있던 것이다.
1차 작성자 : 유지영

상세정보

1799년(正祖 23) 4월 27일, 前 吏曹判書 李時秀의 上疏에 대한 국왕의 批答.
1799년(正祖 23) 4월 27일, 前 吏曹判書 李時秀의 上疏에 대한 국왕의 批答이다.
이 批答은 당일 입직한 주서柳台佐가 편철해 놓은 傳敎軸에 포함되어 있던 것이다.
批答은 上疏 또는 箚子의 여백에 적어서 내리거나, 별도의 [施命之寶]를 답인 하는 敎書의 형식을 갖추어 작성하여 내리는 형태가 있었다. 한편 상소·차자의 원문은 大內에 보관하고 비답의 내용만 적어 전달하는 방식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답의 작성·전달 방식과 그 형태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다만 傳敎軸에는 상소·차자 본문의 내용은 없고 왕의 답변의 내용만 베껴 놓은 형태의 비답만 있다. 이는 상소·차자의 원문이 승정원에 내려지지 않고 大內에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승정원일기를 편찬할 때는 상소·차자와 비답은 문서 가운데 등재 순서가 가장 뒤쳐져 있었고, 또한 대내에 있는 원문을 내려달라고 요청하여 상소·차자 본문을 베끼는 절차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批答의 내용에 상달한 신하 이외에 여타 관아에서 수행할 사항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 승정원은 해당 관아의 낭관을 招致하여 본문의 내용을 듣고 가게 했다. 이때 본문 좌측 여백에 낭관의 이름을 표기하여 확인했다는 사실을 표시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전교축에는 권점[◯]이나 흑점[󰋯]을 찍고 성명을 적어 놓거나, 간혹 점만 찍고 성명은 적지 않은 경우를 볼 수 있다. 본 비답은 議政府 假官 方重叔이 내용을 확인했다.
우측에 '日省錄'이라는 인문의 인장이 있다. 이는 자료가 『日省錄』에 기록할 대상임을 표시하는 것을 보인다. 실제 『日省錄』에는 이 批答의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정조대 傳敎軸을 통해 본 承政院日記의 문서 謄錄체계, 명경일, 古文書硏究44,2014
1차 작성자 : 유지영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99년 4월 27일 주서(注書) 류이좌(柳台佐) 전교축(傳敎軸) - 비답(批答)4

[日省錄]
吏曹判書疏批。
答曰。省疏具
悉卿懇。卿之
書凡三上。而
若批若諭。予
亦三錫矣。士
在巖穴。尙克
幡然。相出相
門。若是謙讓。
未知袁楊
故事。有如許
否。世道朝象
之彌綸也。民
憂國計之經
濟也。政須迪
知眞諶之臣。
日前寄語左
揆。轉致勉出
之意。卿何又
煩琅函。用備
黃閣之應文。
卽日簉朝。以
答予側席
之想。仍
傳曰。此批答遣
史官傳諭。
[��]議政府。假官方重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