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년 9월에 館洞에 사는 李寅漢과 李灝가 高靈 관아에 올린 산송 所志
1867년(고종 4) 9월에 館洞에 사는 李寅漢(1830~1882)과 李灝가 高靈縣 관아에 올린 산송 所志이다. 같은 달에 李寅漢 등은 館洞 뒷산에 증조모 등의 분묘가 있는 산지에 누군가 偸葬을 했는데 무덤 주인을 못 찾고 있는 사정을 호소한 바 있다.
李寅漢 등은 소지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상황을 설명하였다.
"저희는 두 분 산소의 主龍의 腦頭에 偸葬한 무덤의 주인을 지금 비로소 찾았습니다. 곧 읍내의 使令인 趙命喆의 아버지인 男伊였습니다. 呈訴하여 무덤을 파내게 하겠다는 뜻으로 불러서 말을 하니, 그 역시 스스로 자기 죄를 알고 다음 달 10월 안으로 파내겠다고 手標를 냈습니다. 저희가 사사로이 마음대로 하기는 어려우므로, 手標를 점련하여 우러러 호소합니다. 이 사람을 법정에 잡아다가 手標에 의거하여 侤音을 받아서 파내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高靈縣 관아에서는 13일에 처분을 내렸는데, "상놈인 몸으로 어찌 감히 사대부 집안의 선산 腦頭에 偸葬을 했는가. 파낸다는 手標를 받았으니 기한을 어길 것 같진 않다. 만약 이 기한을 넘기면 마땅히 특별하게 엄히 다스리고 督掘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朝鮮時代 明文에 관한 文書學的 硏究, 김성갑,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4
1차 작성자 : 유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