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783년 이유룡(李猶龍) 소지(所志)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B.1783.0000-20180630.62023100015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작성주체 이유룡, 선산도호부
작성시기 1783
형태사항 크기: 81.0 X 48.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초전 벽진이씨 명암고택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월곡 1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관련자료

안내정보

1783년 이유룡(李猶龍) 소지(所志)
1783년(정조 7) 10월에 영천(永川)에 사는 이유룡(李猶龍)선산도호부(善山都護府) 관아에 올린 소지(所志)이다. 이유룡은 대가 끊어진 종가 대신에 종통을 잇게 되었지만, 세계에 대한 문적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이다. 이에 원래 종가가 세거했던 선산 관아에 보관 중인 호적을 상세히 살펴보고자 요청하였다.
1차 작성자 : 유지영

상세정보

1783년에 永川에 사는 李猶龍이 善山都護府 관아에 올린 所志
1783년(정조 7) 10월에 永川에 사는 李猶龍善山都護府 관아에 올린 所志이다.
李猶龍善山 관아에 요청하는 바는 호적 담당 서리에게 지시하여 본인 선조의 호적을 살필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이러한 요청을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저희는 본 고을(善山) 사람으로서 永川에 移居한지 지금 8世가 되었습니다. 누대 선조의 묘가 治下의 땅에 있습니다. 종가 역시 荊谷에 세거하다가 불행히도 중간에 대가 끊어지고 아직 立後하지 못한 것이 몇 년이 되었습니다. 지난번에 제가 선조 靖簡公 耕隱先生에게 시호를 내린 날에 御駕 앞에서 上言을 올려, 傳敎를 받들어 종가를 繼後하게 되었습니다. 宗家가 여러 해 동안 후사가 없었고, 支孫 역시 먼 당에 살아서 전래된 古蹟을 수습할 사람이 없습니다. 저는 數世 동안 外波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姓鄕이 遺牒에 자못 상세하지 못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라고 하고 있다.
즉 벽진이씨 문중의 종가는 예전에 거주했던 善山 荊谷에 거주했지만, 지금은 대가 끊어진 상태이다. 이에 작년 1782년(정조 6) 선조인 耕隱 李孟專(1392~1480)의 시호를 내리는 것을 계기로, 李猶龍이 上言을 올려 종통을 계승할 것을 허락받은 상황이다. 하지만 世系에 관한 사항이 잘 전해지지 않아서 이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어서, 善山 관아에 보관되고 있는 戶籍을 살펴봐야 했던 것이다.
朝鮮時代 明文에 관한 文書學的 硏究, 김성갑,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4
1차 작성자 : 유지영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83년 이유룡(李猶龍) 소지(所志)

永川居化民李猶龍
右謹言所志情由段。民以本鄕之人。移去永川者。今八世矣。累代先墓在治下之地是遣。宗家亦世居荊谷是如可。不幸中絶。尙未立后者。已有年所是如。頃因先祖靖簡公耕隱▣…▣
諡之日。自民等宗中上言于
法駕之前。承傳繼后於宗家是乎矣。宗家累年無嗣。支裔亦在遠地。傳來古蹟。收拾無人是如。民之數世外派。姓鄕頗未詳傳於遺牒中。民之痛泣▣當▣如何。當詳考於民之
先籍。然後可以詳知是乎等以。玆敢仰訴。伏乞。分付該色出籍憑考事。行下爲只爲。
行下向敎事。

城主處分。癸卯十月日

善山官[署押]

考籍以給事。
卄二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