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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성주(星州) 대소민인(大小民人) 등장(等狀)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6+KSM-XB.1862.4784-20140630.E47845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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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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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작성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작성시기 1862
형태사항 크기: 103 X 58.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한개 성산이씨 응와종택 /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관련자료

안내정보

1862년 성주(星州) 대소민인(大小民人) 등장(等狀)
1862년 6월, 성주 지역의 백성들이 암행어사에게 올린 등장이다. 1862년은 농민이 삼정(三政)의 문란의 바로잡을 것을 요구하며 봉기한 임술민란이 일어난 해이다. 민란 이후 백성이 성주 지역의 수세 체계를 바로잡아줄 것을 요청하며 올린 것이다. 암행어사는 백성들의 요구대로 영구히 준행될 것이라고 하였지만, 결가(結價)를 바르게 정하지 않은 폐단은 다시 누적되어 성주에서는 결국 1883년에 민란이 발생한다.[성주민란]
1차 작성자 : 명경일

상세정보

1862년(哲宗 13) 6월, 星州 지역의 백성들이 收稅 체계 개혁을 요청하며 暗行御史에게 올린 等狀이다.
1862년(哲宗 13) 6월, 星州의 백성들이 暗行御史에게 올린 等狀이다. 1862년은 농민이 三政의 문란의 바로잡을 것을 요구하며 봉기한 임술민란이 일어난 해이다. 星州 지역은 1862년 3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 이 지역의 봉기는 5월 13일 宣撫使 李參鉉의 효유로 진정되었다. 이 등장은 이후 백성이 星州 지역의 收稅 체계를 바로잡아줄 것을 요청하며 올린 것이다. 같은 해 收稅 체계 개혁을 요구하는 等狀이 더 있는데, 1862년 성주(星州) 민인(民人) 김문옥(金文玉) 등 등장(等狀)과 ‘1862년 성주(星州) 민인(民人) 박지석(朴之錫) 등 등장(等狀)1,2’가 그것이다.
본 等狀은 ‘1862년 성주(星州) 민인(民人) 박지석(朴之錫) 등 등장(等狀)1,2’에서 이미 개혁을 요청한 바 있는 ‘統營移轉米’에 관한 요청을 담고 있다. 본문에서 ‘統營移轉米’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암행어사에게 설명하고 있다. "統營移轉米는 원래 환곡이었는데, 還穀은 稅米로 변하였고, 환곡 이자[耗數]는 ‘加作’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쌀의 품질은 거친 것을 받아서 정밀한 것으로 바꿔 납부하며, 石數는 매년 늘어나 감당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앞서 감영에서 쌀 1석에 3냥으로 대신 낼 수 있게 해주었는데, 星州 백성은 암행어사에게 이러한 사실에 대해 節目을 만들어주고 통영에 關을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와 같은 星州 백성의 요청에 대해 암행어사는 "이미 감영과 수령이 백성의 일에 온갖 정성을 기울여 영구히 준행하게 할 것이다. 절목까지 만들 필요는 없다."라고 처결을 내렸다.
암행어사는 백성들의 요구대로 영구히 준행될 것이라고 하였지만, 結價를 바르게 정하지 않은 폐단은 다시 누적되어 성주에서는 결국 1883년에 민란이 발생한다.[성주민란]
1차 작성자 : 명경일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62년 성주(星州) 대소민인(大小民人) 등장(等狀)

星州大小民人等狀
右等狀段。本州許多弊瘼。本官城主今方次第矯革。而其中統營移轉米。本以還穀。每年耗條數百石。以本
色輸納是白加尼。近年以來。還穀變爲稅米。耗數變爲加作。米品之受麤換精。石數之年增歲加。爲一戶
民難支之痼瘼。故月前鄕會時。自本官論報巡營。以本色米詳定價。每石三兩得蒙許題往復該
營是乎所。當此大更張之日。不可無另成節目。故玆以齊龥于
奉命指斧之下。特賜矜察。以此意成給節目。更爲發關統營。以爲永久施行之地。千萬血祝。
繡衣使道 處分。 壬戌六月 日。

[暗行御史] [署押]

統移之爲弊多端。
已有所飮略。而旣
有營邑酌定爲
民事誠萬事
永久遵行之道。不
必果於節目有
無向事。
十三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