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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6월 경상도(慶尙道) 상주목(尙州牧) 천하동(川下洞) 완의(完議)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8+KSM-XD.1892.4725-20160630.Y165021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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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증빙류-완의
내용분류: 사회-조직/운영-완의
작성주체 천하동
작성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작성시기 1892
형태사항 크기: 25 X 32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상주 옥동서원 /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상주 옥동서원 /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관련자료

안내정보

1892년 6월 경상도(慶尙道) 상주목(尙州牧) 천하동(川下洞) 완의(完議)
1892년 6월 초3일 경상도(慶尙道) 상주목(尙州牧) 천하동(川下洞)에서 결의한 완의(完議)다. 완의는 천하동에 위치한 옥동서원(玉洞書院) 보유 전답의 소유 분쟁 때문에 작성되었다. 본 완의가 작성되기 이전, 천하동 동원(洞員) 중 일부가 천하동 소재 옥동서원 전답을 마음대로 매매하였고, 이 문제로 소송이 발생하였다. 그 결과 관(官)은 해당 전답을 옥동서원에 환납(還納)하라는 판결을 내렸었다. 이에 천하동의 동임(洞任)인 계수(稧首) 이계하(李啓夏) 등 4인은 천하동 소재 옥동서원의 사환(使喚) 사경답(私耕畓) 13두락(斗落)과 화직답(火直畓) 등 12두락에 대하여, 옥동서원의 보유를 인정하고 더 이상의 분쟁을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며, 본 완의를 작성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분쟁은 조선후기 서원의 경제적 기반 중 하나인, 전답의 존재 양상을 살펴 볼 수 있는 사례가 된다.
『조선후기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1차 작성자 : 이광우

상세정보

1892慶尙道 尙州牧 川下洞에서 玉洞書院 전답의 소유권을 확인하며 작성한 完議
자료의 내용
1892년 6월 초3일 慶尙道 尙州牧 川下洞에서 작성된 完議다. 완의에 참여한 인물은 稧首 李啓夏를 비롯해 黃達善·李啓元·黃任善 4인이다. 이들 성명 아래에는 각자의 署押을 기재해 놓았다. 계수는 천하동의 洞任으로 여겨진다.
천하동黃喜 등을 배향한 玉洞書院이 있는 洞里인데, 본 완의에는 옥동서원 전답의 소유권이 확인되어 있다. 완의에 따르면 원래 옥동서원이 창건 될 때 천하동에 소재한 전답 13두락을 매득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전답은 옥동서원 使喚의 私耕畓으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12두락의 전답을 별도로 마련해 火直畓 등으로 활용하였으며, 院中差役人들이 옥동서원에 應役하는 바탕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使喚畓을 비롯한 전답들에 대한 소유권 분쟁이 발생하였다. 官은 분쟁이 된 전답을 옥동서원에 還納하라는 처결을 내렸으나, 천하동 洞員 중에는 승복하지 않고 분쟁을 일으키는 자가 있었다. 이에 천하동의 계수 이계하 등은 옥동서원 보유 전답에 대하여, 동리 차원에서 더 이상 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결의를 하였고, 그 내용을 담은 본 완의를 작성하였던 것이다.
한편, 옥동서원에는 본 완의 작성 이전, 소송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작성된 稟目과 下帖 등이 전한다. 이들 문서는 옥동서원 전답을 둘러 싼 분쟁과정에서 작성된 것으로, 본 사건의 경위를 파악 할 수 있게 해주는데, 천하동의 몇몇 洞員이 옥동서원 전답을 放賣했기 때문에 사건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자료적 가치
조선후기 서원의 경제적 기반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다. 전답은 서원의 중요한 경제적 기반 중 하나로, 각 서원은 관에서 획급 받은 學田 이외에도 買得 등을 통하여, 전답을 확보해 나갔다. 옥동서원 사환의 私耕畓과 火直畓 등도 매득을 통해 확보된 전답이다. 사환과 화직은 옥동서원의 각종 雜役을 담당하던 院屬들로 노동에 대한 대가 대신 전답을 경작하였던 것이다.
『조선후기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1차 작성자 : 이광우

이미지

원문 텍스트


完議
右完議事考本院刱始之時爲屬民自洞
中買得使喚私耕畓十三斗落已屬
本院而狀又以火直畓八斗落果矩大■〔除〕準畓四斗
落合十二斗落納于本院以爲應役之
地矣不幸有使喚畓訟之端目官以
爲決處而還納院中則日後或有洞員中
有如此諸般畓相持起鬧之獘巳屬
本院則更無雜談之意來完文以納院
中以爲永世憑考者
壬辰六月初二日川下洞稧首李啓夏[署押]
黃達善[署押]
李啓元[署押]
黃任善[署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