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에 安東에 사는 劉秉洙가 산송을 벌이면서 醴泉 관아에 올린 所志.
1890년(고종 27) 2월에 安東 甘泉面에 사는 강릉유씨 문중의 劉秉洙가 산송을 벌이면서 醴泉 관아에 올린 所志이다. 지난 26일경에 劉秉琥에 이어서 소지를 올리고 있다.
劉秉洙는 소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일전에 通明에 사는 尹二出이라는 이름을 한 놈이 선영의 腦後에 偸埋한 일로 呈訴했습니다. 그래서 題音에, '이 놈을 잡아다가 대질 조사하여 督掘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面主人을 데리고 그 집으로 갔습니다. 이놈이 스스로 잘못한 것을 알고 당일에 파내겠다는 뜻으로 手標를 납부했습니다. 그리고 산 아래로 가서 묘를 허물고는, 백반으로 애걸하면서 다음달 3일에 영원히 파내겠다고 했습니다."라고 하고 있다.
즉 劉秉洙는 관아로 尹二出을 잡아와서 대질하는 대신 手記로 사실 관계가 확인되었고 무덤을 파내겠다는 약속을 받았음을 醴泉 관아에 알리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이 기한을 넘기면 즉시 督掘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예천 관아에서는 29일에, "(관아) 밖에서 手標를 작성했으니, 그가 잘못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만역 기일을 넘기거든, 즉시 와서 呈訴하고, 그러면 督掘토록 할 것이다."라는 처결을 내려주었다.
조선후기 山訟 所志類의 文書樣式과 分類, 김경숙, 奎章閣25, 2002
朝鮮後期 山訟 硏究 : 18,19세기 古文書를 중심으로, 전경목,
1차 작성자 : 유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