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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유병호(劉秉琥) 산송관련 소지(所志)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9+KSM-XB.1890.0000-20170630.000000237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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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작성주체 유병호, 예천군
작성시기 1890
형태사항 크기: 83.4 X 54.1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예천 감천 강릉유씨 벌방종가 /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관련자료

안내정보

1890년 유병호(劉秉琥) 산송관련 소지(所志)
1890년(고종 27) 2월에 안동(安東) 감천면(甘泉面)에 사는 유병호(劉秉琥)가 산송을 벌이면서 예천(醴泉) 관아에 올린 소지(所志)이다. 예천에 있는 선영에 투장하고 이를 말리는 집안사람을 구타한 윤이출(尹二出)을 고발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유지영

상세정보

1890년에 安東에 사는 劉秉琥가 산송을 벌이면서 醴泉 관아에 올린 所志.
1890년(고종 27) 2월에 安東 甘泉面에 사는강릉유씨 문중의 劉秉琥가 산송을 벌이면서 醴泉 관아에 올린 所志이다. 소송 상대방은 尹二出이고, 분쟁의 대상이 되는 산지는 普門面 知過谷에 있는 강릉유씨 문중의 선영이다.
劉秉琥는 소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저희 선영은 (醴泉) 수령께서 다스리시는 普門面 知過谷의 뒷산에 있습니다. 뜻하지 않게 지난 밤 초경에 저의 산지기가 급하게 와서 고하기를,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상여를 매고 산 아래로 들어간 것이 댁이 수호하는 묘역 안에 투장할 우려가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저희는 奴를 이끌고... 산 아래로 가니 밤은 이미 깊었습니다. 저희 선영 腦後 수십보 거리이면서 앉으나 서나 보이는 땅에 偸窆은 이미 만들어 놓고, 봉분은 덮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비록 저들은 강하고 우리는 약했지만, 힘을 내어 공역을 금하였습니다. 그러자 수백 명의 喪丁이 몽둥이와 새끼줄을 가지고 저희를 때리고 묶었습니다. 그 기상이 매우 두려웠기에 목숨을 보전하고자 반대로 애걸하며 그 塚主를 물었더니, 通明 驛里에 사는 尹二出이었습니다."라고 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지난 밤의 분쟁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尹二出에 대해 부유함을 믿고 豪悍학 구는 것으로 원래 유명했다고 하면서, 세상에 어찌 이런 적반하장 하는 자가 있냐고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요청하기를, 먼저 잔약한 양반을 능욕한 죄를 다스려주시고, 즉시 무덤을 파내도록 독촉해 달라고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예천 관아에서는 26일에, "다른 사람의 산에 偸葬하고 반대로 산주인을 구타했다. 이는 豪强한 자의 사나운 버릇이다. 대질 조사하고 督掘하기 위해 尹二出을 잡아올 것이다."라는 처결을 내려주었다. 그리고 이를 이행할 실무자로 '主人' 즉 面主人을 지정하고 있다.
조선후기 山訟 所志類의 文書樣式과 分類, 김경숙, 奎章閣25, 2002
朝鮮後期 山訟 硏究 : 18,19세기 古文書를 중심으로, 전경목,
1차 작성자 : 유지영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90년 유병호(劉秉琥) 산송관련 소지(所志)

安東甘泉面居。幼學劉秉琥等。
右謹言痛迫情由段。民等先塋在於治下普門面知過谷後山是加尼。不意去夜初更。民之墓直急急來告曰。不知何許
人。擔轝入山下者。有慮偸葬於宅守護內云。故民等率奴■…■泥濘匍匐。抵山下。則夜已深矣。民之先塋腦後數十
步。坐立俱見之地。偸窆已成。未及蓋▣。故雖曰彼强此弱。拔力禁役。則數百名喪丁。各持杖索。毆之縛之。氣像凜凜。矣以保命
次。還爲哀乞。問其塚主。乃通明驛里居尹二出也。挾富豪悍。素所有名。而世豈有如許賊反荷杖者乎。玆敢仰籲於
明政之下。伏乞。洞燭敎是後。發將羅捉致法庭。先治其凌辱殘班之罪是遣。不日督掘。俾保先壟之地。千萬血祝之至。
行下向敎事。
醴泉城主。處分。
庚寅二月日。劉柱擎劉柱鳳劉秉韶劉秉洙。等。

偸葬人山。反
毆山主。是乃豪
强之悍習。對
査督掘次。
二出
■爲捉
待向事。
卄六日。
主人。狀民。

醴泉官。[手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