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85년 유병호(劉秉琥) 외1인 산송관련 소지(所志)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9+KSM-XB.1885.0000-20170630.000000237446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작성주체 유병호, 안동대도호부
작성시기 1885
형태사항 크기: 72.4 X 56.2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예천 감천 강릉유씨 벌방종가 /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벌방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관련자료

안내정보

1885년 유병호(劉秉琥) 외1인 산송관련 소지(所志)
1885년(고종 22)에 감천면(甘泉面) 벌방리(閥芳里)에 거주하고 있는 유병호(劉秉琥) 등이 연명하여 안동(安東) 관아에 올린 산송관련 소지(所志)이다. 장산동(獐山洞) 선영 근처에 몰래 분묘를 설치한 김호계(金湖溪)를 고발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유지영

상세정보

1885년에 劉秉琥 등이 安東 관아에 올린 산송관련 所志.
1885년(고종 22) 11월에 甘泉面 閥芳里에 거주하고 있는 劉秉琥 등이 安東 관아에 올린 산송관련 所志이다. 강릉유씨 문중의 인물 35명이 연명하고 있다.
所志에서 설명하고 있는 분쟁의 경위는 다음과 같다. 유병호 등의 선영은 감천면獐山洞 前麓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는 지금까지 200여 년간 문제없이 수호해 오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올해 9월 7일에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선영의 單靑龍 지점의 앉으나 서나 모두 보이는 곳에 무덤을 偸埋한 것이다. 이에 한 달여간 수색하여 무덤주인을 찾았는데, 醴泉 文巖洞에 거주하는 金湖溪라는 사람이었다.
문중 사람들은 그에게 가서 관아 정소하여 무덤을 파내게 하겠다고 하니, 그는 스스로 잘못한 것을 알고 11월 10일 안으로 파내겠다고 애걸하였다. 그리하여 용서해 주었는데, 지금 기한이 이미 지났는데 끝내 파낼 생각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상과 같이 그동안의 정황을 설명한 후 유병호 등이 요청하는 사항은, 김호계를 법정에 잡아와서 엄히 다스리고 무덤을 파내게 독촉해 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관아에서는 27일에, 유병호 등[狀民]이 김호계를 데려오라는 처결을 내려주었다.
조선후기 山訟 所志類의 文書樣式과 分類, 김경숙, 奎章閣25, 2002
朝鮮後期 山訟 硏究 : 18,19세기 古文書를 중심으로, 전경목, 전북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6
1차 작성자 : 유지영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85년 유병호(劉秉琥) 외1인 산송관련 소지(所志)

甘泉面閥芳里居民。劉秉琥劉柱昊等。
右謹言痛迫情由段。伏以。民等先塋在於本面獐山洞前麓。而于今二百餘年。無弊守護是加尼。今秋九月
初七日夜。不知何許人。偸埋於單靑龍坐立俱見之地是如。搜覓月餘。乃得塚主。卽醴泉文巖洞
金湖溪爲名人也。民等不勝憤慟。以呈官督掘次。往而言之。則彼隻自知理屈。以十一月旬內掘去之意。百般
哀乞。故姑爲寬恕矣。限日已過。終無掘去之意。世豈有如許奸巧之人心乎。玆敢仰籲於二天一視之下爲去
乎。伏乞。洞燭敎是後。同金湖溪捉致法庭。嚴治督掘。使此殘弱之民。得保先壟之地。千萬血祝之至。
行下向敎事。
城主。處分。
乙酉十一月日。幼學。劉柱擎劉柱斗劉秉奎劉秉甲劉秉魯劉秉韶劉秉洙劉秉殷劉秉穆劉秉汶劉秉懿劉武烈劉兢烈
劉大烈劉汶永劉喆永劉洙永劉配永劉仲永劉壽永劉季永劉鳳源劉星源劉進源劉極源劉衡源劉一源劉德源劉孟源劉恒源
劉道源劉聖源劉秉德劉秉一。等。

率待向
事。
卄七日。
狀民。

行使。[手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