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에 劉秉琥 등이 安東 관아에 올린 산송관련 所志.
1885년(고종 22) 11월에 甘泉面 閥芳里에 거주하고 있는 劉秉琥 등이 安東 관아에 올린 산송관련 所志이다. 강릉유씨 문중의 인물 35명이 연명하고 있다.
所志에서 설명하고 있는 분쟁의 경위는 다음과 같다. 유병호 등의 선영은 감천면의 獐山洞 前麓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는 지금까지 200여 년간 문제없이 수호해 오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올해 9월 7일에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선영의 單靑龍 지점의 앉으나 서나 모두 보이는 곳에 무덤을 偸埋한 것이다. 이에 한 달여간 수색하여 무덤주인을 찾았는데, 醴泉 文巖洞에 거주하는 金湖溪라는 사람이었다.
문중 사람들은 그에게 가서 관아 정소하여 무덤을 파내게 하겠다고 하니, 그는 스스로 잘못한 것을 알고 11월 10일 안으로 파내겠다고 애걸하였다. 그리하여 용서해 주었는데, 지금 기한이 이미 지났는데 끝내 파낼 생각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상과 같이 그동안의 정황을 설명한 후 유병호 등이 요청하는 사항은, 김호계를 법정에 잡아와서 엄히 다스리고 무덤을 파내게 독촉해 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관아에서는 27일에, 유병호 등[狀民]이 김호계를 데려오라는 처결을 내려주었다.
조선후기 山訟 所志類의 文書樣式과 分類, 김경숙, 奎章閣25, 2002
朝鮮後期 山訟 硏究 : 18,19세기 古文書를 중심으로, 전경목, 전북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6
1차 작성자 : 유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