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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1년 유정원(柳正源)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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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유정원
작성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작성시기 1751
형태사항 크기: 34 X 38.5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안동 주진 전주류씨 삼산종가 / 경상북도 안동시 수곡면 문중소개
현소장처: 안동 주진 전주류씨 삼산종가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관련자료

안내정보

1751년 유정원(柳正源) 서간(書簡)
1751년 3월 13일, 유정원이 성묘를 간다는 빌미로 휴가를 얻어 떠난 노정에서 아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내용의 편지이다. 그래서 먼저 수신자인 아들에게 요사이도 잘 지내고 있느냐는 안부의 말을 전한다. 이어서 발신자는 성묘가 있는 곳에 언제 도착했으며,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전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사직서를 제출하고, 여의치 않으면 거듭 제출해야 한다며 사직에 대한 굳은 의지를 보였다. 그런 다음 수신자에게 말을 보내려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된 사정과 매사에 조심해서 뒷말이 나지 않게 하라는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이 편지에서의 문제는 발신자가 자신을 아버지라고만 하고 있어 이것이 구체적으로 누가 누구에게 보내는 것인지 알 수 없으며, 연도를 표시하는 간지를 다 쓰지 않고 첫 글자만을 써서 정확한 연도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편지는 소장처인 삼산종가에 유정원의 다른 편지들과 함께 보관되어 있고, 또 다른 편지에서 작성 연도를 이런 방식으로 표기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게다가 1751년 2월 6일의 편지를 보면 성묘를 한다며 말미를 얻어서 3월 10일 전에 떠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이 편지의 내용은 2월 6일의 편지에서 계획했던 것을 실행으로 옮기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편지는 유정원이 1749년 자인현감으로 부임한지 2년 가까이 되어갈 무렵인 1751년 사직서를 제출하고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도중의 일을 알 수 있는 것이 된다.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
『古文書集成 四十四』 -安東 全州柳氏篇 1(水谷宗宅)-,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全州柳氏大同譜』,
『三山集』,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751년 3월 13일, 柳正源이 성묘를 간다는 빌미로 휴가를 얻어 떠난 路程에서 아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내용의 편지이다.
1751년 3월 13일, 柳正源이 성묘를 간다는 빌미로 휴가를 얻어 떠난 路程에서 아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내용의 편지이다. 이 편지는 수신자인 아들에게 요사이도 계속 잘 지내고 있느냐는 안부의 말로 시작된다. 이어서 발신자 자신은 11일 오전에 당도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당도한 眞寶에는 庶母가 낳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 집의 셋째 아들이 계속 아팠다고 했다. 그래서 발신자가 그 증상을 살펴보니, 비록 크게 의심하고 염려할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아랫마을과 윗마을이 모두 불결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발신인은 그들과 따로 떨어져 있기로 했다고 하였다. 그렇게 한 것은 그 집안의 어른과 아이가 모두 옴이 올라있어 나가며 피해야하는 예절 또는 아주 편하지 않아 심히 고민스러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발신자가 이렇게 자기 신변의 일들을 전한 뒤에 화재를 바꾸어 사직의 글을 써서 보낼 것이니 곧바로 올리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런데 만약 그 사직서가 도로 돌려보내져 오면 이번에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지만, 마땅히 연속해서 사직의 글을 올려 반드시 체직되도록 기약해야 할 것이라며 사직에 대한 발신자의 굳은 의지를 보였다. 그런 다음 화재를 다시 바꾸어 수신자, 즉 발신자의 아이들이 돌아올 때 卜馬를 보내려고 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발신자, 즉 수신자의 아버지가 며칠 휴식을 취하고 산소에 성묘를 가고자 하는데 마땅히 달 것을 빌릴 곳이 없어서 말을 아이들에게 보내지 않고 붙잡아 두겠다고 했다. 그러나 특별히 체직을 허락받게 된다면 아버지인 발신자가 아들인 수신자에게 말을 보낼 것이니 타고와도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끝으로 발신자는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매사에 조심해서 뒷말이 나지 않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이 편지에는 그 내용을 파악하는데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 발신자가 편지의 말미에 자신을 "父"라고만 하고 있어 이것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것만을 알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누가 누구에게 보내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다음으로 편지의 작성 연도를 "辛三月十三日"이라고 하고 정확한 연도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편지는 所藏處인 三山宗家에 유정원의 다른 편지들과 함께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유정원은 다른 편지에서 작성 연도를 이런 방식으로 표기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이 편지는 유정원이 그의 아들에게 보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1751년 2월 6일의 편지를 보면 성묘를 한다며 말미를 얻어서 3월 10일 전에 떠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이 편지의 내용은 2월 6일의 편지에서 계획했던 것을 실행으로 옮기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편지는 유정원이 1749년 자인현감으로 부임한지 2년 가까이 되어갈 무렵인 1751년 사직서를 제출하고 고향인 안동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도중의 일을 알 수 있는 것이 된다.
『한문서찰의 격식과 용어』, 박대현, 아세아문화사, 2010
『古文書集成 四十四』 -安東 全州柳氏篇 1(水谷宗宅)-,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全州柳氏大同譜』,
『三山集』,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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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日來連得好遣耶吾十一 日午前得達而眞寶庶弟 家三兒繼痛觀其症情 雖不至大段疑慮而上下村 旣多不潔不得已以今日使 之區別而渠家大小皆有 疥瘡出避之節亦多不便 甚爲憫慮辭狀書送使 之卽呈還送儻或今番不 如意當以連續呈辭期於 必遆耳汝輩歸事今便欲 下送卜馬而吾欲數日休 息作山所展省之行他無借乘 處故姑留之雖得許遆之奇送馬騎來亦無 所妨凡事謹之勿生後言爲可忙不一 辛三月十三日 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