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8년(同治 7) 12월 20일, 林先祿이 金甲伊에게 葛谷員의 토지를 賣渡하며 발급해준 土地賣買明文
1868년(同治 7) 12월 20일, 林先祿이 金甲伊에게 葛谷員의 토지를 賣渡하며 발급해준 土地賣買明文이다.
토지매매의 순서는 먼저 賣渡人과 買收人이 서로 합의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고, 다음으로는 이를 시행하기 위해 契約書를 작성하고, 代金을 授受하고 난 뒤 賣物을 인도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러한 전 과정이 명시되는 곳이 명문이라는 문서이다. 그래서 명문에는 먼저 매매가 이루어진 날이 언제이며, 買收者가 누구인가와 賣渡事由가 기재된다. 이어서 매도물의 구입 경위와 그 所在地를 비롯해 結負, 斗落, 배미[夜味] 등과 같은 매도물에 대한 정보와 價格, 매도에 따라 權利가 移讓되었음을 證言하는 文句가 담겨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賣渡人, 筆執, 證人 등이 기재됨으로 문서로서의 효력을 갖는다. 하지만 이러한 사항들이 모두 필수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부가 생략되기도 한다.
이 명문을 통해서 보면, 이 토지의 거래가 이루어진 때는 年號가 同治 7년이며, 干支가 戊辰年이 되는 1868년 12월 20일이며, 買收者는 金甲伊이다. 이 토지를 매도하게 된 事由는 다른 곳의 토지를 구입하기 위해서이다. 매매의 대상이 되는 토지는 스스로 매입하여 얻은 논으로 葛谷員에 있는 良字 字號의 43地番 논 10負 6束과 45地番 논 6負 5束의 3斗落이다. 이 토지의 賣買價는 동전 60兩으로, 이 돈을 받고 넘겨줘야 할 本文記가 다른 田地에 붙어 있어 보내주지 못하여 新文記를 金甲伊에게 보내어 영원히 放賣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이날 이후로 혹여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문서로써 사실의 정확성 여부를 가리라는 말로 이 문서가 토지매매의 사실을 證明하는 문서임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논의 주인인 林先祿과 證人으로 참여한 辛江集은 이름과 함께 手決을 남겼으며, 筆執으로 참여한 사람은 手決과 함께 金이라는 姓氏만을 남겼다.
이 문서의 특징은 토지매도의 사유로 移買를 든 것이다. 이매, 즉 다른 곳의 토지를 매입하기 위해 지금의 토지를 파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移徙를 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의 농지에 가까운 곳의 토지를 매입하여 농사의 편리를 도모하려는 것 때문이다. 안동지역에서는 토지매도 사유로 이매를 내세우는 경우가 19세기에 들어오면서 크게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18세기 이후 중앙정계로의 진출이 막혀버린 이 지역 양반들이 향촌에서의 세력을 구축하려 하면서 기존의 토지에 가까운 곳에 토지를 집적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매매 당사자들을 보면 이 문서의 所藏處인 全州柳氏 三山宗家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이 문서가 삼산종가에서 이 토지를 구입하면서 넘겨받은 舊文記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삼산종가에는 1884년에 이 토지를 구입한 명문이 있는데 당시 매입가는 50兩이었다. 삼산종가에서는 이 명문보다 16년 뒤에 토지를 구입하였지만 그 값은 10兩이나 더 싸게 매입하였다. 일반적으로 토지의 값이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에서 이렇게 구입가보다 싼값에 토지를 매도한다는 것은 매도자에게 그 만큼 다급한 사정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朝鮮中期田畓賣買硏究』, 이재수, 집문당, 2003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3
「조선과 명‧청시기의 토지 매매문서 비교 연구」 『국학연구』 17집, 전경목, 한국국학진흥원, 2010
「18세기 황윤석의 매매정보 수집과 소유권으로서의 매매명문 활용」 『민족문화논총』 제52집, 정수환,
1차 작성자 : 하창환, 2차 작성자 : 이수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