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56년 상주 옥동서원(玉洞書院) 품목(稟目)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Y08+KSM-XC.1856.4725-20160630.Y1650210121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첩관통보류-품목
내용분류: 사회-조직/운영-품목
작성주체 옥동서원, 성주
작성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작성시기 1856
형태사항 크기: 100 X 60
장정: 낱장
수량: 1장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이두
소장정보 원소장처: 상주 옥동서원 /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상주 옥동서원 /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관련자료

안내정보

1856년 상주 옥동서원(玉洞書院) 품목(稟目)
1857년 12월일에 모동면 천하동에 사는 허장수 외 4인이 사도에게 암행어사의 판결문에 따라 처분해 달라고 올린 소지이다. 모동면 천하동에 사는 허장수 외 4인은 11월 16일에 암행어사에 자신들의 처지를 하소연하고 판결문을 받았다. 그것은 천하동에서 징수하는 백골군포와 관련한 것이었다. 당시 동민들은 불과 6~7가구만 남은 동네에 사망한 6명의 군포를 추징하자 남은 자들도 모두 도산할 지경이라고 했다. 그래서 암행어사에게 받은 제음을 본 소지에 함께 기재하여 상주목사의 처리를 청원하였다. 제음의 내용은 사실을 조사하여 특별히 사정을 헤아려서 군포를 면제해 주고, 더하여 남은 백성들이 보호를 받도록 행하라고 하였다. 그런 이유로 이에 감히 글에 붙여서 하소연한다고 했다. 그러하니 뒤에 기록한 백골의 각 항을 암행어사의 제교에 일체 의거하여 천하동민들이 군포를 면제받고,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거듭 요청하였다. 상주목사는 판결문에서 본리에 덮어 씌워서 초래한 일을 벌하고 정해진 대로 행할 것이라고 하였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

상세정보

1856년 3월 초10일에 玉洞書院 院長 黃岱老와 齋任 및 儒生 등 30명은 옥동서원의 屬店인 吾道店의 常漢 成岳伊李完卜이 享祀를 위해 모인 士林들을 詬辱한 사실을 보고하고 그들을 監營에 보고하여 엄하게 처벌할 것을 요구하는 稟目
1856년 3월 초10일에 玉洞書院 院長 黃岱老와 齋任 및 儒生 등 30명은 옥동서원의 屬店인 吾道店의 常漢 成岳伊李完卜이 享祀를 위해 모인 士林들을 詬辱한 사실을 보고하고 그들을 監營에 보고하여 엄하게 처벌할 것을 요구하는 稟目이다. 품목에서는 성악과 완복의 兩漢이 옥동서원에서 일으킨 변고로 품목을 올린 바가 있다고 하였다. 그 품목에 대한 題音에서 말하기를 各店에서 各院에 應役하는 것은 언제나 그곳의 백성들이 원하는 바에 붙는 것인데 지금 어찌 이리 시끄러운 것이냐며 옥동서원의 요구에 부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兩漢의 언사가 사족을 두려워하는 것이 없고 부인으로 하여금 많은 선비들이 마침 모여있는 때와 장소에서 앞뒤를 헤아리지 않고 모진 짓을 다하여 악을 쓰는 것은 매우 통탄한 일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완고하게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므로 죄인을 잡아들일 사람을 보내어 잡아서 오면 엄하게 다스릴 것이라고 말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옥동서원 원임과 유생들은 이전의 품목에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연명하여 품목을 올렸다. 이것은 자신들의 의견을 다시 강하게 요구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院店과 관련한 것이 아닌 兩漢에 대한 처벌에 관한 것이었다. 옥동서원 측은 어진 수령이 자신들의 뜻을 헤아려서 國學을 지키고, 사림을 扶植하는 지극한 뜻을 손을 씻고 엄숙하게 그 뜻을 기리며 嚴懲하는 것을 기다린다고 하였다. 현재의 사태에 직면함에 이르러 해당 店에서 질그릇을 완고하게 거절한 일은 잠시 동안 논하지 않고, 우선적으로 성정이 음침하고 매우 흉악하여 詬辱하고 행동거지가 끝도 없이 난잡한 행세를 하는 것을 바로잡고자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양한의 사태는 서원이 설립된 지 수백 년 동안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이며, 많은 사림들 사이에서도 처음 있는 變怪라고 말한다고 했다. 나아가 대저 朝家로부터 祭物을 받는 것은 嚴重한 것이며, 많은 선비들이 거리에서 물러나 있는 것은 肅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사액서원에 국가에서 제물을 내리고, 선비들이 서원에서 齋戒하는 것은 大享의 엄중함 때문임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오직 저 兩漢만이 조금의 두려워하거나 꺼려하는 뜻이 없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 옆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한다고 했다. 그들은 院門에 머물려 막아서서 소매를 걷어 올리고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며, 높은 목소리로 크게 말하는 것이 험악하여서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제사에 관여할 수 없다고 말하고, 官家를 자신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으며, 옥동서원이 어찌 서원이냐고 말하고, 양반이 어떤 물건이냐고 하였다. 그들은 또한 저들 즉 양반들이 죽으면 자신들이 살고, 자신들이 죽으면 저들은 살 수 없다고 하였다. 그 외는 설명할 방법이 없기에 옥동서원 측은 참지 못하고 붓에 먹을 묻혀 말을 형용한 것이니, 합하에게 옳지 않지만 굽어 살펴달라고 했다. 나아가 자신들이 둥근 갓을 쓰고, 모난 신발을 신고 이름하여 士子[선비]라고 하지만 변변치 못한 하나의 店漢에게 모질고 사나운 욕을 받았는데, 자신들이 받은 욕은 곧 옥동서원이 욕을 받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자신들이 비록 무력이나 밝은 안목은 없지만 용기를 내어 기한 내에 부끄러움을 씻어내려고 하나 능력이 안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엎드려 애걸하니 監營에 定配의 嚴刑으로 다스리도록 보고함으로써 사액서원의 매우 중요함이 멀고 가까운 곳에서 업신여김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나, 많은 선비들이 분주하게 움직여 肅淸한 땅에서 발 디딜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였다. 상주목사는 이것은 미욱하고 어리석어서 事理를 판별치 못하는 무식한 놈의 짓에 불과한데, 稟目의 題辭 가운데 이리저리 말을 하는 것은 도리어 간섭한 것으로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고 하였다. 또한 이 오도점을 옮겨 붙인 院官 또한 혐의스러운 일을 멀리하려고 한다. 이와 같이 여러 번 품의 하면 마음에 편할 수 있겠는가? 깊이 헤아려서 모든 것이 마땅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상주목사는 양한들이 행한 행동을 축소하고 별일 아닌 것처럼 여기고 있었지만, 옥동서원에서 계속 처벌을 재촉하자 그들의 행동이 官權을 간섭하는 것이라 여기며 불편한 심기를 나타내었다. 또한 오도점이 옮겨간 서산서원 원장에 대한 혐의는 지운다고 분명히 하였으며, 이 일로 더 이상 품의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옥동서원 측에서 이런 판결을 깊이 헤아려 마땅히 행하라고 판결하였다. 여기에서 당시 수령이 가지고 있던 옥동서원에 대한 인식과 지역내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수령은 노론의 영수이자, 안동김씨 세도정권의 선조를 제향하는 서산서원의 눈치를 보면서 옥동서원의 일을 빨리 마무리 지으려 했다. 또한 兩漢들이 옥동서원에서 모욕적인 언사를 하였던 것도 옥동서원의 위상이 그만큼 실추된 상황을 반증하고 있다. 양한들은 자신들이 소속된 서산서원의 위세를 등에 업고서 품목의 본문에서 표현한 것처럼 수령이나 옥동서원 사림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비슷한 시기 괴산에 있었던 華陽書院이 정권의 위세에 편승해서 院屬들까지 횡포가 심하였던 것과 유사한 것이다.
자료적 가치
이 자료는 19세기 중반 영남지역 향촌사회의 실상을 보여준다. 구체적으로는 영남지역 남인계 서원에 대한 노론계 지방관의 미온적 태도와 서원의 권위에 따른 원속들의 移屬 및 향촌사회에서의 사족지배체제가 붕괴되어가는 모습이 확인된다. 한편으로는 노론계 유력 서원의 위세를 빌려 원속들의 횡포가 심화되어 갔던 상황으로도 볼 수 있다.
『조선후기 서원연구』, 이수환, 일조각, 2001
『조선후기 문중서원 연구』, 이해준, 경인문화사, 2008
1차 작성자 : 이병훈, 2차 작성자 : 이수환

이미지

원문 텍스트

稟目
右稟爲伏以生等以本▣▣成岳完卜兩漢▣▣變於本院事有所仰稟矣 題敎有曰各店之應役於各院每因該民願付則今何紛紜乎
兩漢之言辭不恐使妻發惡於多士適會之時所爲極爲痛頑卽當發差捉來嚴治云云 生等▣以仰揣
仁候衛 國學扶士林之至意盥手莊頌恭俟 嚴懲處下而到今事面則該店陶器頑拒之事姑不暇論最是窮凶絶悖之詬辱難形莫狀之擧措設院
後累百年所未聞所未覩而許多儒林間初有變怪也夫自 朝家所奉之祭物何等嚴重也多士祗街里辟易何等肅敬也惟彼兩漢少無畏憚之意任自
跳踉傍若無人此豈非心不▣化不及者乎其若攔住院門攘臂疾視高聲大言無非凶悖之說其曰祭▣不關也其曰 官家吾不畏也其曰玉洞是何院兩
班是何物也其曰彼死則吾生吾死則彼不得生其他不可道之說生等不忍泚筆形言而
閤下可以俯諒矣 生等圓冠方履名爲士子而受絶悖之辱於幺麽一店漢生等之受辱卽本院之受辱生等雖不武明目張膽期欲雪此恥而後己伏乞 報使
營門嚴刑定配使莫重 額院 至見侮於遠邇而使駿奔多士得以容足於肅淸之地無任恐懼謹稟
丙辰三月初十日玉洞書院院長黃岱老
齋任柳觀祚
黃蘭善
儒生黃集善
趙雲岐
黃大鉉
盧秉一
金瑞河
全敍九
黃延老
黃摯鉉
盧性愚
姜逌永
黃致老
盧秉觀
全文九
黃景老
金鎭圭
呂漢龍
黃馨周
洪祐駿
黃在定
黃仁鉉
金熙鏞
黃粲周
李秉淵
黃圭老
康永疇
黃文善
宋洽
是不過蠢蠢無
識之漢稟辭
中云云反涉不
安此店移付
之 院官亦不
無遠嫌如是
屢稟其能
安於心乎深
可(諒)悉宜當
向事 初十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