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영양남씨(英陽南氏) 영양군(英陽郡) 칠성봉(七星峰) 산송문서
일련문서는 영양남씨(英陽南氏)가 1904년 10월에 문중 사람들이 영양군(英陽郡) 북초면(北初面) 와구동(瓦邱洞)의 칠성봉(七星峰)에 있는 문중 선산을 두고 벌인 산송 사건을 담고 있다. ①1904년 영해(寧海), 영양(英陽), 안동(安東)에 사는 영양남씨 문중 사람 97명이 연명하여 영양군 관아에 올린 上書, ②영양군 관아에서 와구동에 내린 전령(傳令), ③ 다시 영양남씨 문중 사람들이 올린 上書, ④ 와구동(瓦邱洞) 존위(尊位)가 영양군 관아에 올린 첩정(牒呈)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의 문서에서는 산송의 한 유형으로 허장(虛葬)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보여준다. 허장이란 남의 땅에 몰래 무덤을 쓰기 위하여 땅 임자의 눈치를 떠보기 위해 가짜 무덤을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문제가 되는 선산이 있는 칠성봉(七星峰)은 현재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칠성리에 있으며, 이곳에는 통정공(通政公)과 찰방공(察訪公)의 무덤이 소재하고 있었다. ①번과 ②번 문서는 아직 투장한 무덤이 虛葬이라는 것을 밝혀지기 전의 상황을 보여준다. 즉 이미 세 차례나 투장한 사건이 발생한 지점에 누군가 또 투장을 하여 무덤주인을 찾아내서 파내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이를 산 아래 마을 사람에게 지시하고 있다. ③번 문서에는 비로소 투장한 무덤이 虛葬이라는 것이 밝혀졌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영양남씨 문중 사람들은 두민(頭民)을 독촉하여 무덤을 파보라고 했는데, 과연 허장이었고 사기 그릇 하나만 있을 뿐이었다. 영양남씨 측에서는 유학 남조발(南朝潑) 등을 대표로 하여 앞으로 생길 수 있는 폐단을 막기 위한 처결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영양군 수령은 "이미 허장인데, 무슨 염려가 더 있겠는가. 걱정하지 말고 물러나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④번 문서는 와구동에서 무덤을 파낸 결과를 마을의 존위(尊位) 등이 영양군 수령에 첩정으로 보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선산을 관리하는 문중은 투장자를 대상으로 산송을 진행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본 사례에서는 투장자가 밝혀지지 않았고, 허장이라는 소문이 돌아 정소를 제기한 영양남씨와 와구동 측에서 무덤을 조사한 결과 소문이 사실로 판명되었다. 무덤을 철거하는 과정에서도 영양군 관아에서는 고을 책임자에게 전령을 보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철거 책임을 해당 마을의 존위와 두민에게 지운 것이다.
문서 번호 |
자료명 |
발급 |
수취 |
① |
1904년 영해(寧海) 유학(幼學) 남유집(南有鏶) 등 산송관련 상서(上書) |
남유집 등 영양남씨 |
영양군 |
② |
1904년 영양군(英陽郡) 와구동(瓦邱洞) 전령(傳令) |
영양군 |
와구동 존위 등 |
③ |
1904년 영해(寧海) 유학(幼學) 남조발(南朝潑) 등 산송관련 상서(上書) |
남조발 등 영양남씨 |
영양군 |
④ |
1904년 영양군(英陽郡) 와구동(瓦邱洞) 존위(尊位) 산송관련 첩정(牒呈) |
와구동 존위 등 |
영양군 |
1차 작성자 : 김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