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및 특징
1799년(正祖 23) 8월 11일, 승정원 입직 주서 柳台佐가 편철한 傳敎軸의 첨지이다.
傳敎軸은 승정원에서 당일 국왕이 내린 批答, 判付, 傳敎, 備忘記 등을 모아서 편철해 놓은 기록물이다. 이 기록물은 국왕의 명령을 정확히 기록 보관함으로써, 혹 있을지 모르는 전달의 오류를 예방하고 여타 관서가 업무에 참고하게 하는 기능을 하였다. 傳敎軸은 또한 『承政院日記』 작성의 직접적인 자료가 되었고, 동시에 『日省錄』이나 朝報의 작성에도 정보를 제공하였다. 한편 승정원에는 국왕에게 입계하는 문서인 ‘草記’를 편철해 것으로 추정되는 ‘草記軸’도 만들어졌다. 草記軸의 기능 역시 傳敎軸과 같은 것이다.
柳台佐가 편철한 이 기록물은 엄격히 말하면 傳敎軸과 草記軸이 합해진 형태이다. 양자를 합한 이유는 기능이 비슷한 두 기록물을 굳이 분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草記도 국왕의 명령인 判付가 적혀있다. 따라서 이 기록물은 傳敎軸이라 부르는 편이 타당하다.
傳敎軸의 표지에 붙이는 첨지에는 일자, 국왕의 위치, 常參·經筵의 시행 여부, 승정원 좌목을 적어 놓았다. 그리고 당일 비답을 받은 上疏나 箚子 등의 수량을 적어 놓기도 하였다. 그리고 동그라미나 ‘準’ 자, ‘ㄴ’자, ‘上’ 등의 표기를 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의미의 표기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고, 다만『承政院日記』에 전교축의 내용을 옮겨 적는 과정의 완료 여부를 표기한 것으로 추측이 가능하다.
이날 국왕은 창경궁에 있었고, 상참과 경연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비가 人定부터 사경까지 내렸는데, 측우기의 수심은 5푼이었다.
승정원 좌목에서 6승지는 첨지를 붙여 이름을 가려 놓고, 그 위에 6房 중 어느 房을 담당하고 있는지 표기하였다. 이 자료는 첨지가 떨어져 나간 상태이고, 『承政院日記』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주서는 正注書, 假注書, 事變假注書가 있고 각각 성만 기록해 놓았다. 사변가주서의 경우 성명이 모두 표기되기도 한다. 출근 여부는 당상관인 승지의 경우 ‘坐’, 당하관인 주서의 경우 ‘仕’로 표기하고, 출근하지 않으면 그 이유를 명시하였다. 당일 입직하는 관원은 ‘直’자를 표기하였다. 이날 승정원 좌목은 다음과 같다.
行都承旨 李集斗(출근, 입직), 行左承旨 李益運(출근), 行右承旨 金達淳(출근), 左副承旨 洪義浩(출근, 입직), 右副承旨 鄭尙愚(출근), 同副承旨 沈象奎(주자소로 감), 注書 柳(출근, 입직), 1명은 차임되지 않음, 假注書 呂(출근), 事變假注書 弼聖賚(출근)
이 날 전교축에는 傳敎 13건, 批答 2건, 判付 1건, 承政院啓辭 6건, 草記 9건, 政事 기록 3건이 편철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