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0년 1월 10일 | 光海12 | 庚申
아파서 앓았다.
1620년 1월 15일 | 光海12 | 庚申
망참절사(望參節祀)를 지냈는데, 서고 절하는 것을 간신히 했다.
1619년 1월 20일 | 光海11 | 己未
선사에 배알하였다. 몸이 좋지 않았다. 제독 숙(提督叔)의 집으로 나가자, 동네 사람 3~4명이 보러 왔다. 저녁에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가 <지명>이수(二水)지명>에서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나갈 무렵 길에서 <인명>김일지(金一之)인명>를
1619년 3월 11일 | 光海11 | 己未
선사에 배알하였다. 비로소 묘소의 풀을 베었다. 기름을 짰다.
1620년 1월 2일 | 光海12 | 庚申
몸이 좋지 않아서 객이 와도 예대로 하지 못했다.
1619년 4월 15일 | 光海11 | 己未
선사에 배알했다. 망참(望參)을 행했다. 이날 통독 강원이 31인이었다. 제독 숙(提督叔)과 <인명>이가화(李可和)인명>도 왔다. <인명>희로(希魯)인명>는 일 때문에 관아에 들어갔다.
1619년 4월 23일 | 光海11 | 己未
선사에 배알했다. 『예기(禮記)』를 읽었다.
1619년 11월 13일 | 光海11 | 己未
기운이 매우 고르지 못했다. 저녁 내내 신음했다.
1622년 1월 4일 | 光海14 | 壬戌
기운이 불편했다. 손님을 접대했다. <인명>이도굉(李道宏)인명>이 와서 말하기를, 성지(性智)가 경복궁 옛터를 보고 화살 맞아 죽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고 했다. 인간 세상에 정말 호걸한 사람이 있구나. 제독숙(提督叔)이 왔다.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인명>이가화
1619년 12월 6일 | 光海11 | 己未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예기(禮記)』를 읽었다.
1619년 12월 14일 | 光海11 | 己未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왕모(王母)의 기제사를 행했다. <인명>이가화(李可和)인명>, <인명>서룡지(徐龍之)인명>가 보러왔다. <인명>양경사(楊景泗)인명>는 어제 왔다가 오늘 저녁에 돌아갔다.
1620년 1월 7일 | 光海12 | 庚申
몸이 좋지 않았다. 아침을 먹은 뒤 병을 무릅쓰고 선생께 곡을 하였다. 오후에 입관(入棺)하였다. <인명>장덕회(張德晦)인명>와 함께 묵었다.
1619년 12월 20일 | 光海11 | 己未
아침에 <인명>최강후(崔康侯)인명>가 와서 이야기를 나눴다. 잠시 <인명>전숙근(全叔勤)인명>과 이야기를 나누고 당(堂)으로 돌아왔다.
1619년 11월 10일 | 光海11 | 己未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지명>이수(二水)지명>로 갔다. 당시 고모(姑母)의 기운이 고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 들어가 뵙지 못했다. <인명>정호인(鄭好仁)인명>이 이미 <지명>달성(達成)지명>으로 향했으나 길에서 만날 수 없었다.
1619년 11월 20일 | 光海11 | 己未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가 보러 왔다.
1622년 1월 9일 | 光海14 | 壬戌
기운이 불편했다. 이따금 손님들이 왔다.
1619년 12월 11일 | 光海11 | 己未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1620년 1월 4일 | 光海12 | 庚申 | 맑다.
1620년 1월 13일 | 光海12 | 庚申
누워서 앓았다.
1621년 10월 5일 | 光海13 | 辛酉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가 <지명>이수(二水)지명>로부터 들려 고모의 평안함을 알렸다. 첨아(添兒)도 왔다. <인명>정영보(鄭寧甫)인명>는 그 때 내려오지 못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