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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 4월 1일
| 光海5
| 癸丑
| 아침에 비가 내리다.
고개를 넘어 터에 도착했다. <인명>설(渫)인명>을 보내 제문(祭文)을 지어 성주(城主)의 여츤(旅櫬)에 제사하도록 했고, 만사(輓詞) 한 수를 지었으니 내일 장차 발인(發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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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 4월 7일
| 光海5
| 癸丑
| 비가 조금 내리다.
아침에 낙 형(樂兄)을 방문했는데, 형은 이때 섬돌 가의 국화를 옮겨 심고 있었다. 동자 두 명에게 지시하여 <인명>정암(靜菴)[조광조(趙光祖)]인명>의 신도비명(神道碑銘)을 꺼내어 보여주며 여러 번 탄식을 그치지 않으면서 "이처럼 바른 문장을 어찌 쉽게 얻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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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 5월 5일
| 光海5
| 癸丑
터에 있었다. 집에서 나온 증험이 조금 살아나는 것 같아 기뻤다. 일기를 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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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 8월 29일
| 光海5
| 癸丑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치재(致齋)했다.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와 <인명>사유(士綏)[이응기(李應祺)]인명>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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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 4월 15일
| 光海5
| 癸丑
| 바람이 세게 불다.
산에 있었다. <인명>최강후(崔康侯)[최흥국(崔興國)]인명>가 와서 한참동안 이야기하고 갔다. <인명>전계신(全繼信)인명> 공 또한 보러왔다. 새 수령 <인명>김윤안(金允安)인명>은 <지명>영가(永嘉)지명>사람으로 일찍이 거업(擧業)할 때 면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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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 2월 3일
| 光海5
| 癸丑
| 종일 크게 바람이 불다.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당에 있었다. 『주서(朱書)』를 교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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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 2월 11일
| 光海5
| 癸丑
당으로 돌아왔다.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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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 4월 3일
| 光海5
| 癸丑
터에 있었다. 일기를 편수했다. 목화가 추위를 맞아 말라 죽었으니 관에 낼 세금을 어찌 감당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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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 8월 20일
| 光海5
| 癸丑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가 들어온다는 기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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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 8월 7일
| 光海5
| 癸丑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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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 4월 8일
| 光海5
| 癸丑
터에 있었다. <인명>손흥언(孫興彦)[손기업(孫起業)]인명>이 보러 왔다. 순사(巡使)가 여목(餘木)을 거두는 것을 파하여 관내(關內)로 달려가 곁에서 보니, <인명>이상신(李尙信)인명> 이하는 모두 백성의 물건을 도적질한 신했다.【공물(貢物), 여목, 방물(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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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 3월 30일
| 光海5
| 癸丑
| 밤에 크게 비가 내리다.
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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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 3월 17일
| 光海5
| 癸丑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남은 통증이 가시지 않았다. 성주(城主)가 병으로 위급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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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 5월 4일
| 光海5
| 癸丑
터에 있었다. <인명>서백유(徐伯裕)[서승후(徐承後)]인명>가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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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 8월 27일
| 光海5
| 癸丑
산에 있었다.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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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 4월 13일
| 光海5
| 癸丑
| 저녁에 흐리다.
터에 있었다. 일기를 편수했다. <인명>이가화(李可和)[이경배(李景培)]인명>가 재(齋)의 역(役)을 의논하러 왔다. 와서 말하기를 모(某)는 절에 올라가 예불한다고 했다. 내가 웃으며 "대성(臺城)에서 굶어 죽는데, 부처는 구할 수가 없었다."고 하니 모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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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 8월 22일
| 光海5
| 癸丑
| 흐리다.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인명>최기(崔璣)인명>가 보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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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 8월 9일
| 光海5
| 癸丑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소학(小學)』을 읽었다. <인명>이홍중(李弘中)인명>, <인명>최기(崔璣)인명>가 『소학(小學)』을 물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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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 4월 10일
| 光海5
| 癸丑
터에 있었다. 일기를 편수했다. <인명>이가화(李可和)[이경배(李景培)]인명>가 와서 사당 짓는 것에 관한 일을 의논했다. 내가 한숨을 쉬며 "범인(凡人)이 앞뒤로 감사(監司), 수령(守令)의 앞임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사적인 바람을 칭념(稱念)하여 득신(得伸)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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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1년 4월 17일
| 光海13
| 辛酉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아침을 먹은 뒤에 현을 나와 제독숙(提督叔),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 사유(士綏)가 모두 용천사(湧泉寺)로 갔다. <지명>수암(燧巖)지명> 개울가에서 쉬다가 수암사(燧巖寺)에 묵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