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3년 5월 21일 | 光海5 | 癸丑
터에 있었다. 신임 성주가 부임했으니 그는 <인명>김윤안(金允安)인명>이었다. 향인(鄕人)들이 좌수(座首) <인명>손기업(孫起業)인명>을 논박했다. <인명>도응유(都應兪)인명>, <인명>채선길(蔡先吉)인명>이 중심이 되어 향정(鄕正), 도감(都監)이 녹을
1613년 2월 1일 | 光海5 | 癸丑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말의 병이 낫지 않아서 밤새도록 먹이지 못했다.
1600년 2월 26일 | 宣祖33 | 庚子 | 아침에 비 오고 저녁에 개다.
동원(洞員)들을 초청해서 작은 술자리를 열었다. <인명>박경보(朴敬甫)[박유헌(朴惟憲)]인명>가 비를 무릅쓰고 왔다.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는 비옷이 없어서 오지 않았다.
1601년 6월 11일 | 宣祖34 | 辛丑 | 맑다가 흐리다.
흥효기(興孝基)의 보리를 타작했다.
1601년 6월 19일 | 宣祖34 | 辛丑
산에 있었다. 아침을 먹은 후에 들을 돌아보았다. 그 참에 일장(日章)을 방문해 추로주(秋露酒)를 마시고 취했다. 저녁에 돌아올 때 말에서 떨어져 갓이 엎어지고 신을 잃은 채 정신없이 업혀 인가(人家)로 들어갔다.
1605년 6월 25일 | 宣祖38 | 乙巳
이른 아침에 배에 올랐다. <인명>곽돈부(郭敦夫)[곽대덕(郭大德)]인명>【대덕(大德)】, <인명>이지화(李之華)인명>가 술을 들과 와서 작별했는데, 어지럽게 술을 마시며 시를 짓고 작별했다. 낮에 당(堂)으로 돌아왔다. 이날은 나의 생일이다. <인명>이탁(李濯)
1606년 6월 23일 | 宣祖39 | 丙午
선사(先祠)에 배알을 했다. <인명>의정(義丁)인명>을 관에 넣어 매장을 했다.
1600년 2월 11일 | 宣祖33 | 庚子
산에 있었다. <인명>강후(康侯)[최흥국(崔興國)]인명>가 와서 이야기 했다. 『근사록(近思錄)』을 읽었다.
1600년 2월 19일 | 宣祖33 | 庚子
선고(先考)의 기제사를 의례대로 행했다. 『근사록(近思錄)』을 읽었다.
1601년 5월 23일 | 宣祖34 | 辛丑
동(洞)으로 향했다. 낮에 <지명>파계(巴溪)지명> 천정(川亭)에서 쉬었다. <인명>박경보(朴敬甫)[박유헌(朴惟憲)]인명>, <인명>양가보(楊嘉甫)[양우형(楊遇亨)]인명>가 와서 이야기를 하고 회를 쳤다.
1605년 8월 25일 | 宣祖38 | 乙巳
선사(先祠)에 배알을 했다. 시향(時享)을 의례대로 행했다. <인명>손흥언(孫興彦)[손기업(孫起業)]인명>이 와서 이야기를 했다. <인명>낙재(樂齊)[서사원(徐思遠)]인명>에게 편지를 부쳤다. 부(府)로 들어가 통판(通判)을 뵙고 <인명>신중(愼仲)[채신중(蔡愼
1605년 9월 4일 | 宣祖38 | 乙巳
선사(先祠)에 배알을 했다. 산으로 갔다.
1613년 5월 23일 | 光海5 | 癸丑
신임 성주를 뵈었으나, 오래 보지 않아 거의 옛 면목이 없었다.
1613년 5월 28일 | 光海5 | 癸丑
터에 있었다. 일기를 편수했다.
1600년 2월 28일 | 宣祖33 | 庚子
산에 있었다. <인명>강후(康侯)[최흥국(崔興國)]인명>와 이야기했다. 낮에 <인명>박계지(朴繼智)인명>가 술을 가지고 와서 이야기했다. 강후가 『근사록(近思錄)』 1권을 빌려가니 그 마음가짐이 좋았다.
1601년 6월 13일 | 宣祖34 | 辛丑
1601년 6월 21일 | 宣祖34 | 辛丑 | 비가 흩뿌리다.
산에 있었다.
1605년 6월 27일 | 宣祖38 | 乙巳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동우(同友)들이 모두 모였다. <인명>낙재(樂齋)[서사원(徐思遠)]인명>에게 편지를 부쳤고, 고깃덩이와 술병을 부쳤다.
1606년 6월 25일 | 宣祖39 | 丙午
선사(先祠)에 배알을 했다. <인명>의정(義丁)인명>의 어머니가 와서 슬퍼하니 참혹하여 차마 보지 못했다.
1600년 2월 13일 | 宣祖33 | 庚子
마를 심었다. 저녁에 동(洞)으로 갔는데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가 이미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