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7년 11월 25일 | 宣祖40 | 丁未
날이 밝기 전에 발인하여 산에서 회격(灰隔, 회다짐)을 시켰다. 사람들 마다 모두 산 사람을 섬기는 마음이라고 했다. 살펴보니 마음이 조금 든든하게 했다. 저녁 무렵 당(堂)으로 돌아왔다.
1606년 9월 12일 | 宣祖39 | 丙午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주서(朱書)』를 읽었다.
1606년 11월 9일 | 宣祖39 | 丙午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인명>송학무(宋學懋)인명>가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명>성유(聖兪)[류요신(柳堯臣)]인명>에게 갔다.
1607년 10월 1일 | 宣祖40 | 丁未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의례대로 삭참(朔參)을 행했다.
1606년 11월 29일 | 宣祖39 | 丙午
당으로 돌아왔다.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1607년 1월 13일 | 宣祖40 | 丁未
이른 아침에 <지명>밀성(密城)지명>으로 향했다. <지명>유천(遊川)지명>에서 말에게 먹이를 주었다. 날이 어둡기 전에 <지명>대원(大院)지명>의 <인명>손시명(孫諟命)인명> 집에 들어갔다. 그는 나의 삼종제(三從弟)로, <인명>시눌(諟訥)[손시눌(孫諟訥
1608년 2월 7일 | 宣祖41 | 戊申
저녁 무렵 헌관(獻官)과 집사(執事) 모두 사당에 들어가서 알성(謁聖)하고 고유(告由)했다. 밤에 차관(差官)이 주상전하가 승하하시고 새 주상으로 부위(副位)가 되었다는 글을 가지고 순사(巡使)에게 갔다고 들었다. 신민들의 망극한 아픔은 말로 이루 다 할 수 있겠는가?
1607년 2월 2일 | 宣祖40 | 丁未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향교에 갔다.
1607년 2월 10일 | 宣祖40 | 丁未
아침에 성조소(成造所)의 심부름꾼이 왔다. 동인(洞人)이 마련한 술을 마시다가 성조소(成造所)로 향하려는데 <인명>양원지(楊元之)인명> 형제 및 수재(秀才) <인명>이돈(李敦)인명>이 술을 가지고 와서 <지명>용두암(龍頭巖)지명> 천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1607년 3월 24일 | 宣祖40 | 丁未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1607년 5월 9일 | 宣祖40 | 丁未 | 소낙비가 내리다.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퇴계집(退溪集)』을 읽었다.
1607년 11월 26일 | 宣祖40 | 丁未
선사(先祠)에 배알하고 『심경(心經)』을 읽었다. 저녁 무렵 남인(南人)이 와서 <인명>자덕(玆德)인명>이 불로 죽었다는 기별을 알려왔다. 놀라 달려갔다. 어찌할까. 어찌할까.
1606년 9월 13일 | 宣祖39 | 丙午
산에 있었다.
1606년 11월 10일 | 宣祖39 | 丙午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산으로 갔다. 이가 아팠다.
1607년 11월 27일 | 宣祖40 | 丁未
관곽을 만들어 저녁에 양 군(梁君)의 곁에 매장했다. 비통한 마음이 장유(長幼)에 있는 것이 아닌데, 하물며 비명의 죽음임에랴.
1606년 12월 1일 | 宣祖39 | 丙午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삭참례(朔參禮)를 의례대로 치렀다. 『소학(小學)』을 읽었다.
1607년 1월 14일 | 宣祖40 | 丁未
아침에 <인명>손경징(孫景徵)[손기양(孫起陽)]인명>의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낮 무렵 점필재서원(佔畢齋書院)에 배알했다. 고개를 넘어 <인명>류백승(柳伯承)인명>의 내간(內艱)상에 조문했다. <지명>대목(大木)지명>의 <인명>최입지(崔立之)인명> 집으
1607년 1월 29일 | 宣祖40 | 丁未
머물렀다.
1607년 2월 8일 | 宣祖40 | 丁未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지명>팔거(八莒)지명>에 사람을 보내 문병했다. 산으로 향했다. 지나가는 길에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를 보았는데, 어떤 사람에게 까닭도 없이 치욕을 당했다고 하니, 우습다.
1607년 3월 22일 | 宣祖40 | 丁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