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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28일
| 哲宗11
| 庚申
| 밤에 눈이 오다.
승보시(陞補試) 구초(九抄), 통독(通讀)과 실초(實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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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2월 6일
| 哲宗11
| 庚申
| 춥다.
창녕(昌寧)이 떠나가니 슬픔을 이루 말 할 수 없다. 민어(民魚) 2 미(尾), 석어(石魚) 3속(束), 소창의(小氅衣) 빨 것 1 건(件), 행건(行巾) 1, 전복(全鰒) 6개(介), 피극(革屐) 1건(件), 세해(細醢) 1항(缸)을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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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2월 14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사간원동(司諫院洞) 오 참봉(吳參奉) 댁으로 가서 봉사(奉事) <인명>조병악(趙秉岳)인명>을 찾았다. 길에 부사(副使) <인명>박규수(朴珪壽)인명> 령(令)을 찾아뵙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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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2월 22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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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2월 30일
| 哲宗11
| 庚申
| 눈이 내리다.
<인명>홍익섭(洪翼燮)인명>이 헌관(獻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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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5년 3월 15일
| 光海 7
| 乙卯
| 낮에 흐리다.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망참례(望參禮)를 지냈다. 낮에 <지명>이수(二水)지명>로 갔는데, <인명>희로(希魯)인명>가 먼저 갔다. <인명>양경수(楊景洙)인명>가 뒤따라갔는데, <인명>신경한(申慶漢)인명> 및 교인(校人) <인명>응수(應守)인명>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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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24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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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27일
| 哲宗11
| 庚申
| 흐리다. 밤에 비가 내리다.
임 우(林友)가 아침밥을 먹기 전에 찾아왔다. 군록을 타서 다행스러웠다. 감기가 결국 낫지 않아 고민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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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8월 13일
| 哲宗11
| 庚申
| 흐리다.
온릉(溫陵) 추석제(秋夕祭) 대축관으로 차출되어 제물을 모시고가서 능소에 올렸다. 두암(斗岩) 황산 장(黃山丈)이 반촌(泮村)에 들어왔다. <인명>군서(君敍)인명>가 모시고 왔다. 문단(文丹) 상인(喪人) <인명>김경옥(金景玉)인명>의 편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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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9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4경(更)에 바람과 추위가 매우 심하다.
4경(更)에 제사를 행한 뒤에 바람과 추위가 매우 심해졌다. 봉사(奉事) <인명>장기백(張己百)인명> 간신히 반촌(泮村)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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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18일
| 哲宗11
| 庚申
| 비오다.
승보시(陞補試) 육초(六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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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26일
| 哲宗11
| 庚申
| 눈이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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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2월 4일
| 哲宗11
| 庚申
| 몹시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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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2월 12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납향대제(臘享大祭)였다. 병조(兵曹)에서 참알(參謁)했다. <인명>이주현(李周賢)인명> 태(台)가 반촌(泮村)에 들어와 가서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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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2월 20일
| 哲宗11
| 庚申
| 춥다.
도목정사가 이루어졌다. <인명>최효술(崔孝述)인명>은 장릉 참봉에, <인명>강진(姜鎭)인명>은 순릉(純陵) 참봉에 제수되었다. <인명>이종상(李鍾祥)인명>은 의례를 근거로 복직되었다. <인명>성발(聖發)인명>이 올라오는 편에 아이들의 편지를 보았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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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2월 28일
| 哲宗11
| 庚申
| 비오다.
이때의 장맛비는 또한 때에 맞단 말인가? 고민과 번뇌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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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4년 8월 9일
| 光海 6
| 甲寅
| 비가 뿌리다가 개다.
선사에 배알했다. 저녁에 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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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26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확교(確橋)에서 장령(掌令) <인명>권종헌(權宗憲)인명> 직소(直所)를 찾아갔다가 입반(入泮)했다. 지동(紙洞) 임 우(林友)편에 가서(家書)를 보았다. 들으니 큰 아들이 황달이 심해진다고 했다. 놀라고 걱정됨을 이길 수 없었다. <인명>순옥(舜玉)인명>과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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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8월 12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밤에 비가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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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7일
| 哲宗11
| 庚申
| 흐리다.
망극하고 망극했다. 소전유사(掃奠有司)가 <지명>고양(高陽)지명>으로 출발했다. 이참(吏參)으로 <인명>박제인(朴齊寅)인명> 첨서(添書)되어 낙점되었다. <인명>이능형(李能亨)인명>이 의흥(義興)에 제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