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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년 3월 26일
| 光海2
| 庚戌
산에 있었다. <인명>봉진(鳳眞)인명>이 와서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가 시험에 떨어져 어제 저녁에 들어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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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4월 20일
| 光海3
| 辛亥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기운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 부자가 보러 왔다. <인명>권근(權斤)인명>이 첨지(僉知) <인명>우배선(禹拜善)인명>의 편지를 가지고 와서 알렸는데, 아들을 가르치는 일 때문이었다. 낮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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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9년 6월 5일
| 光海1
| 己酉
| 비가 많이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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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년 7월 9일
| 光海2
| 庚戌
| 덥다.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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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9년 12월 15일
| 光海1
| 己酉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참례(參禮)를 의례대로 지냈다. 팔에 종기를 앓았다. 몸이 좋지 않았다. 관의 심부름꾼 편에 정자 숙(正字叔), <인명>이학가(李學可)[이종문(李宗文)]인명>, <인명>이무백(李茂伯)[이윤우(李潤雨)]인명> 등 여러 명 앞에 편지를 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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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1월 27일
| 光海3
| 辛亥
| 종일 비가 내려 물이 불다.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이락연원록(伊洛淵源錄)』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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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3월 5일
| 光海3
| 辛亥
| 아침에 비가 흩뿌리다가 낮에 개다.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가 약 4첩을 소매에 넣어 왔다. 한번 복용에 3두(斗)이니 정말로 계속하기는 어려웠다. <인명>강후(康侯)[최흥국(崔興國)]인명>, 희로와 이야기하다가 저녁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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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10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밥을 먹은 뒤에 전적(典籍) <인명>윤종헌(尹鍾憲)인명>과 <지명>송동(宋洞)지명>으로 가 정언(正言) <인명>이우원(李右原)인명>을 방문했다. 이어서 동경(東京)으로 가서 진사(進土) <인명>권중평(權平仲)인명>, 진사 <인명>이경휘(李景輝)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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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7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아침에 걸어서 북령(北嶺)을 넘어 <지명>경동(京洞)지명>의 승지(承旨) <인명>박규수(朴珪壽)인명>를 찾아갔다. <지명>의성(義城)지명> 종인(宗人) <인명>박성필(朴聖弼)인명>의 편지를 전했다. <지명>청석동(靑石洞)지명>에 들려 지평(持平)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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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16일
| 哲宗11
| 庚申
| 흐리고 춥다.
구일제(九日製)를 열어 친림 춘당대에서 부(賦)를 지었다. 제(題)는 「조월시서즉태공병법(朝月視書卽太公兵法)」이었다. <인명>목승석(睦承錫)인명>, <인명>조성하(趙成夏)인명>, <인명>한응국(韓應國)인명> 세 명이 직부전시(直赴殿試)되었고, <인명>성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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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27일
| 哲宗11
| 庚申
| 비오다.
초복. 반주(泮主)가 연일 불을 지피지 않았고, 군록(軍祿) 또한 빠지게 되니 걱정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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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19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소서(小暑). 아침밥을 먹은 뒤에 <지명>공동(公洞)지명> 승지(承旨) <인명>유성환(兪晟煥)인명>, <지명>낙동(駱洞)지명> <인명>제헌(齊憲)인명> 태(台)를 방문하려 했으나 돌아오지 않아 만나지 못했다. <지명>저동(苧洞)지명> 승지(承旨)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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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7월 2일
| 哲宗11
| 庚申
| 비오다.
종묘(宗廟)에서 추향(秋享) 대제(大祭)을 집행했다. 벼이삭이 틀 때에 찬비가 침음하니 농사가 걱정스러웠다. 문득 설사증세가 있어 고민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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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7월 10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왕고(王考)의 제삿날이다. 밖에 있어 직접 집도할 수가 없으니 마음의 통박함을 어이할까? 이날 정사(政事)에서 정언(正言) 말망(末望)에 들었다. 【<인명>안윤시(安潤蓍)인명>가 헌납(獻納)에 제수되었고 <인명>이담구(李潭九)인명>가 정언(正言)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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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7일
| 哲宗11
| 庚申
| 흐리다. 늦게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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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14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오후에 바람 불고 춥다.
오후에 바람 불고 추우니 괴이했다. 시절의 기상이 절조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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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0월 4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우연히 감기 때문에 불쾌하여 고민스러웠다. 친림(親臨)하여 숭정전(崇政殿)에서 감제(柑製)를 설행하고 부를 지었는데, 제목은 「수천지호사방래하(受天之祜四方來賀)」였다. <인명>남헌진(南憲珍)인명>이 직부전시(直赴殿試)되었다. 태백성(太白星)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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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9월 30일
| 哲宗11
| 庚申
| 흐리다.
대직(臺職)이 순조롭게 바뀌어 다행스러웠다. 도목정사에서 <인명>김병지(金炳地)인명>가 이조 참의(吏曹參議)에 제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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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7월 25일
| 哲宗11
| 庚申
| 맑다.
<지명>하상(河上)지명>에 보내는 답서(答書)를 써서 진사 <인명>류경만(柳景萬)인명>이 돌아가는 편에 부쳤다. 이날 도목정사에서 장령(掌令)에 제수되어 감축됨이 망극했다. 박○○, <인명>한용덕(韓容悳)인명>, <인명>서재▣(徐在▣)인명>가 물망에 올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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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5월 23일
| 哲宗11
| 庚申
| 비올 기미가 조금 있다. 아침밥을 먹은 뒤부터 비로소 비가 내리며 종일 개지 않다.
기우제를 지냈다. <인명>강진규(姜普奎)인명>, <인명>류지영(柳芝榮)인명>이 모두 제관(祭官)으로 차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