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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 11월 9일
| 光海8
| 丙辰
낮에 인사하고 돌아왔다. 날이 저물어 당(堂)으로 돌아와 선사에 배알했다. <인명>박백인(朴伯仁)【원갑(元甲)】인명>의 편지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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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 11월 15일
| 光海8
| 丙辰
선사에 배알했다. 망참례를 지냈다. <인명>정사명(鄭嗣明)인명> 형제, <인명>양동란(楊冬蘭)인명>, <인명>서지업(徐知業)인명>, <인명>여우백(呂遇伯)인명> 형제, <인명>김선경(金善慶)인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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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년 9월 28일
| 光海9
| 丁巳
몸이 불편했다. <인명>이지파(李之葩)인명>가 <지명>하산(霞山)지명>에서 왔다. <인명>이자실(李子實)인명>은 삭방(朔方)에서 돌아왔다. 【당시 북평사(北評事)로 차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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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8년 1월 25일
| 光海10
| 戊午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주서(朱書)를 읽었다. 길 떠날 채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인명>행보(行甫)인명>가 매양 이르기를, "어느 때에 쓰기를 마치고 읽겠는가?"라고 하였다. <인명>호인(好仁)인명>이 돌아왔다. <인명>서정보(徐精甫)인명>와 <인명>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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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년 6월 20일
| 光海9
| 丁巳
| 매우 덥다.
선사(先祠)에 배알하고 당(堂)에 있었다. <인명>이홍중(李弘中)인명>이 탈복(脫服)하고 비로소 보러 왔다. <인명>양경사(楊景泗)인명>, <인명>전유익(全有翼)인명>의 편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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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년 10월 9일
| 光海9
| 丁巳
| 지진이 나고 안개가 자욱하다.
선사에 배알했다. <인명>설(渫)인명>이 와서 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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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 2월 11일
| 光海8
| 丙辰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채소밭을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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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 4월 4일
| 光海8
| 丙辰
아직 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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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 4월 12일
| 光海8
| 丙辰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몸이 혹 편안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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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 5월 29일
| 光海8
| 丙辰
| 흐리다가 개다.
선사에 배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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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 7월 24일
| 光海8
| 丙辰
선사에 배알했다. <인명>전계신(全繼信)인명>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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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 8월 24일
| 光海8
| 丙辰
선사에 배알했다. 왕부(王父)의 기제사를 지냈다. <인명>정호의(鄭好義)인명>가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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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 9월 16일
| 光海8
| 丙辰
선사에 배알했다.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가 <인명>김취영(金就英)인명>의 편지 한 장과 모당(慕堂) 두 편액의 글자를 가지고 왔다.【안동(安東) 공생상사(貢生上舍)로 강(講)하러 왔다.】 벽에 붙여서 볼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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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 10월 14일
| 光海8
| 丙辰
수령이 매우 정성스럽게 접대하여 미안하고 미안했다. 수령이 객에게 일러 말하길, "이 사람은 나의 동심지우(同心之友)니, 죽어도 따라갈 것이다."라고 했다. 날이 저물어 돌아간다고 말했다. 밤이 깊어 남가(南家)에 들어가서 <인명>희로(希魯)인명>와 함께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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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 9월 11일
| 光海8
| 丙辰
선사에 배알했다. 산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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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 9월 19일
| 光海8
| 丙辰
선사에 배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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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년 1월 11일
| 光海9
| 丁巳
몸이 매우 좋지 않아 저녁 내내 누워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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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년 12월 1일
| 光海8
| 丙辰
| 춥다.
누워 앓았다. 가래와 천식이 끓고 기침이 났다. 내외가 모두 병을 앓아서 삭참례를 지내지 못했다. <인명>양경사(楊景泗)인명>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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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년 1월 14일
| 光海9
| 丁巳
선사에 배알했다. 몸이 좋지 않았다. 베끼는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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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년 3월 21일
| 光海9
| 丁巳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팔이 아팠다. 우측 머리에 가끔 찌르는 듯한 통풍이 있었다.『연원록(淵源錄)』을 읽었다. 일기를 편수했다. <인명>자실(子實)인명>의 편지를 받았다. 들으니, ‘어떤 한 사인이 소(疏)를 올려 대비를 폐할 것을 진술했는데, 전날 경운궁(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