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7년 12월 7일 | 光海9 | 丁巳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몸이 좋지 않았다. <인명>이자실(李子實)인명>의 답서를 받았는데, <지명>병산(屛山)지명>의 수령이 병의 큰 형세가 조금 낫다고 하였다.
1617년 12월 15일 | 光海9 | 丁巳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망참(望參)을 의례대로 지냈다.
1619년 1월 1일 | 光海11 | 己未
마을 사람들이 보러 왔다. <인명>최강후(崔康侯)[최흥국(崔興國)]인명>, <인명>전숙근(全叔勤)[전흥업(全興業)]인명>이 보러 왔다. 또한 종일 마을 밖의 사람들도 왔으며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도 왔다. 강후와 함께 함께 지내려고 생각하
1619년 2월 23일 | 光海11 | 己未
선사에 배알하였다.
1618년 1월 1일 | 光海10 | 戊午 | 아침에 눈이 내리다.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삭참(朔參)과 겸하여 절사(節祀)를 지냈는데, 손님이 드물었다.
1618년 1월 9일 | 光海10 | 戊午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1619년 4월 4일 | 光海11 | 己未
팔이 아팠다. <인명>설(渫)인명>과 <인명>이간(李幹)인명>이 보러왔다.
1618년 2월 19일 | 光海10 | 戊午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선고(先考)의 기제사를 지냈다. 6일에 역병이 늘어섰기 때문에 예를 행할 수 없었다. 이제 옳고 그름을 깨달아 의례대로 절하고 곡을 했다. <인명>김선경(金善慶)인명>이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1618년 2월 20일 | 光海10 | 戊午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인명>이근사(李謹思)인명>가 와서 전하기를, "제독 숙(提督叔)이 예문관 봉교(㙯文館奉敎)로 뽑혔는데, <인명>내암(來庵)인명>의 문하에 있는 아무개 아무개가 조정에서 함부로 말하기를, ‘임금을 범하고 어진 이를 욕하는 글이 그 집에
1618년 2월 28일 | 光海10 | 戊午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인명>양경사(楊景泗)인명>가 자신의 글을 썼다.
1619년 2월 28일 | 光海11 | 己未
선사에 배알하였다. 부인의 제증(諸證)은 조금 나아졌으나 머리는 덜하지 않았다. 저녁에 <인명>김선경(金善慶)인명>이 <지명>신안(新安)지명>에서 돌아와서 도담강기탕(導痰降氣湯) 2~3첩을 제조하여 복용하라고 하였다.
1618년 1월 6일 | 光海10 | 戊午
1619년 4월 1일 | 光海11 | 己未
팔의 통증으로 사당례와 삭참례에 참석하지 못했다. <인명>최 청숙(崔淸淑)인명>이 와서 보았는데 술을 조금 마셨으나 팔이 통증이 괴롭다.
1618년 2월 3일 | 光海10 | 戊午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주서(朱書)를 읽었다. 어제 <인명>양원지(楊元之)인명>가 옛날 시사를 가지고 편지로 써서 물었는데, 나는 평소 거짓으로 꾸미는 것을 일삼지 않고 곧바로 대답하기를, "지금 송사간의 증서를 만들려고 한다고 들었다"고 하였다. 불명확한 죄는
1618년 4월 5일 | 光海10 | 戊午
몸이 좋지 않았다.
1618년 2월 25일 | 光海10 | 戊午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주서(朱書)를 읽었다.
1618년 4월 8일 | 光海10 | 戊午
1618년 4월 13일 | 光海10 | 戊午
선사에 배알했다.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와 함께 <지명>사수(泗水)지명>로 향했는데, 종숙씨(從叔氏)도 갔다. 성주(城主)가 술을 가지고 선생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물녘에 모두 인사하고 돌아갔다. 선생님의 모습이 평상처럼 손상됨이
1618년 5월 23일 | 光海10 | 戊午
선사에 배알했다. 치재했다. 종숙과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가 모두 입재(入齋)했다.
1618년 6월 2일 | 光海10 | 戊午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주서(朱書)』를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