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9년 2월 18일 | 光海11 | 己未
목수 <인명>이동(李同)인명>, <인명>영복(永福)인명>이 비로소 역을 하였다.
1619년 2월 27일 | 光海11 | 己未
선사에 배알하였다. <인명>정호인(鄭好仁)인명>이 돌아갔다. <인명>김선경(金善慶)인명>이 <인명>이순적(李順迪)인명>에게 약제를 물었다. <인명>양경사(楊景泗)인명>가 왔다. 노비를 추쇄하는 일로 <지명>월성(月城)지명>으로 향했다. 이때 <인명>이
1618년 1월 5일 | 光海10 | 戊午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어제 보내온 주찬을 선사에 올렸다. <지명>상파(上巴)지명>와 <지명>하파(下巴)지명> 및 <지명>현내동(縣內洞)지명>의 벗들을 불러서 <지명>지내(池內)지명>에서 함께 파했다.
1619년 3월 30일 | 光海11 | 己未
선사에 배알했다. 팔의 종기를 앓았다.
1619년 4월 8일 | 光海11 | 己未 | 아침에 흐리고 부슬비가 내리다. 낮에 개다.
선사에 배알했다. 이른 아침 제독 숙(提督叔)에게 나아가 뵈었다. 관례 의식을 치렀다. <인명>이가화(李可和)인명>가 빈이 되었고 동원(洞員)이 모두 모였다. 저녁에 당(堂)으로 돌아갔다.
1618년 4월 4일 | 光海10 | 戊午
몸이 좋지 않았다.
1618년 2월 24일 | 光海10 | 戊午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주서(朱書)를 읽었다. 선생이 보름에 <지명>가천(加川)지명>에 들어갔다고 들었다. 비로소 비석에 관한 일을 시작하였다.
1618년 4월 16일 | 光海10 | 戊午
선사에 배알했다. 『주서(朱書)』를 읽었다. 장정 한 명당 탄 8석을 징수하니, 궁궐에 쓸 철을 주조하기 위해서이다. 또 장정 한 명당 소목 6질, 탄 1석은 모두 작년보다 배가 된다. 백성들이 장차 사방으로 흩어져서 구렁 속에 뒹굴게 되는 것은 이것 뿐 만이 아니다.
1618년 4월 12일 | 光海10 | 戊午
선사에 배알했다.
1618년 4월 20일 | 光海10 | 戊午
선사에 배알했다. 『주서(朱書)』를 읽었다.
1617년 12월 8일 | 光海9 | 丁巳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몸이 좋지 않았다.
1617년 12월 16일 | 光海9 | 丁巳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1619년 1월 2일 | 光海11 | 己未
<인명>양원지(楊元之)인명>가 보러왔다. <인명>최경합(崔敬合)인명>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좋은 사람인데 애석하다. <인명>손흥언(孫興彦)인명> 또한 왔다. 마을 사람들이 술을 가지고 온 자가 제법 있었다. 낮에 당으로 돌아왔다. 선사에 배알했다.
1619년 2월 24일 | 光海11 | 己未
선사에 배알하였다. 병이 또 심해진 것 같다.
1618년 1월 2일 | 光海10 | 戊午
저녁에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가 병을 무릅쓰고 들어와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손님이 드물었다. 종씨(從氏)도 들어와서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1618년 1월 10일 | 光海10 | 戊午
1619년 4월 5일 | 光海11 | 己未
팔의 통증이 낫지 않아 일마다 화를 내어 절도에 맞지 않은 것이 평소에 변화가 되지 않으니, 죽은 다음에야 기필할 것이다. <인명>이덕용(李德容)인명>이 와서 심의(深衣)를 내놓았고 무명실(木綿絲)을 늘어놓았다. 기별을 듣고 가지고 갔으나 오래지 않아 완성해서 왔다
1618년 4월 1일 | 光海10 | 戊午
선사에 배알했다. 삭참례를 지냈다. 몸이 매우 좋지 않았다. 별도로 자통(刺痛)은 없지만 머리가 무겁고 기운이 없다. 아침에는 일어날 수 없어서 억지로 일어났으니, 이 증세는 일상적인 증상이 아니다.
1618년 2월 21일 | 光海10 | 戊午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주서(朱書)를 읽었다. <인명>조응지(曺應祉)인명>가 보러왔다.
선사에 배알했다. 조세 거두는 것을 날마다 독촉하여 백성들이 사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인명>사유(士綏)[이응기(李應褀)]인명>가 술을 가지고와 위로하고, 청명가절(淸明佳節)을 감상했다. 이어서 <인명>이덕용(李德容)인명>이 <인명>정응(靜應)[채몽연(蔡夢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