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8년 10월 18일 | 光海10 | 戊午
선사에 배알했다. 『주서(朱書)』를 읽었다.
1618년 12월 2일 | 光海10 | 戊午
저녁에 <인명>잠(潛)[손잠(孫潛)]인명>이 처음 드러누웠으니 또한 역병에 걸린 것이다.
1619년 2월 8일 | 光海11 | 己未
선사에 배알하였다. <인명>양경사(楊景泗)인명>가 「월령도」 초고를 끝내고 떠났다. 죽은 동지(同知) <인명>손사균(孫士鈞)인명> 공(公)의 아들 <인명>문순(文順)인명>이 보러 왔는데 선대의 서족(庶族)이었다. 일찍이 <인명>배락천(裵洛川)인명>의 문하
1619년 2월 16일 | 光海11 | 己未
조금 나아졌다.
1619년 6월 26일 | 光海11 | 己未
선사에 배알했다.
1617년 10월 26일 | 光海9 | 丁巳
선사에 배알했다. 관령(官令)으로 일부(一夫) 당 초혜(草鞋) 2켤레, 술 2병을 거두어 통신사 행차 시에 군관 노복 및 역졸에게 지급하려고 하니 이것 또한 새 수령의 정사였다.
1617년 9월 3일 | 光海9 | 丁巳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비로소 선생의 답서와 무백(茂伯)의 편지를 받았다. 근래 재(齋)로 돌아온다는 기별이 있었다.
1619년 2월 14일 | 光海11 | 己未
병이 심하였다. <인명>양경사(楊景泗)인명>가 부(府)에 들어가 소합원(蘇合元) 3원(元)을 얻어서 왔다. 복용하니 잠시 효과가 있었다.
1619년 6월 24일 | 光海11 | 己未
선사에 배알했다. <인명>정사명(鄭嗣明)인명>이 술을 가지고 와서 보았다.
1617년 10월 24일 | 光海9 | 丁巳
선사에 배알했다. 당에 있었다. 일기를 편수했다. 성주가 청소하고 관인이 <지명>원정참(元亭站)지명>에서 통신사를 머물며 기다렸다. 하인을 조석으로 제공하는 것을 백성에게 명하여 돌아가며 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새 수령의 정사였다. 통신사는 이때 정해진 기일이 없었
1617년 9월 1일 | 光海9 | 丁巳
선사(先祠)에 배알하고 삭참례(朔參禮)를 의례대로 행했다.
1617년 9월 9일 | 光海9 | 丁巳
선사(先祠)에 배알하고, 절사(節祀)를 의례대로 지냈다. 종숙의 편지를 받았다. 낮 무렵 술을 들고 <지명>임천(臨川)지명>위의 옛 놀던 곳에 올랐는데, 동원들이 매우 적었다. 달을 타고 당(堂)으로 돌아왔다.
1617년 12월 13일 | 光海9 | 丁巳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치재(致齋)하였다. <인명>영보(寧甫)인명>의 편지를 받았다.
1618년 12월 27일 | 光海10 | 戊午
집의 전염병으로 골몰하다가 한번 회포를 풀고자 하는 뜻으로 종숙(從叔)의 집에 갔는데 숙씨가 마침 <지명>사수(泗水)지명>로 가서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인명>손흥언(孫興彦)인명>은 인근에서 우거하고 있었는데 술을 가지고 와서 이야기 하였다. <인명>이지파(
1619년 2월 20일 | 光海11 | 己未
<인명>양경사(楊景泗)인명>가 왔다.
1617년 12월 28일 | 光海9 | 丁巳 | 종일 흐리고 저녁에 비가 조금 내리다.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1618년 1월 7일 | 光海10 | 戊午
1619년 2월 7일 | 光海11 | 己未
선사에 배알하였다. 예기를 읽었다. 일기를 편수하였다. <인명>양경수(楊景洙)인명>가 와서 황어(黃魚)를 주었다. 비로소 선사에 올렸다. <인명>양경사(楊景泗)인명>도 왔다. 비로소 「월령도」 초고를 썼다.
1619년 2월 15일 | 光海11 | 己未
병세가 다하여 조금 나아졌다.
1619년 6월 25일 | 光海11 | 己未
선사에 배알했다. <인명>서희득(徐希得)인명>이 술을 가지고 와서 보았다. 병 때문에 <지명>이수(二水)지명> 고모를 뵙고 절할 수 없었다. 인사가 점점 정 같지 않으니 애석할만하다. 【고모의 생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