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8년 8월 22일 | 光海10 | 戊午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주서(朱書)』를 읽었다.
1618년 10월 2일 | 光海10 | 戊午
선사에 배알했다. 몸이 좋지 않았다. 흰색별이 있었는데 끝은 날카롭고 몸체가 컸으며 하늘 한 가운데에서 멈춰있는 것이 이미 5,6일 이었다. <인명>첨아(添兒)[손첨(孫添)]인명>가 와서 평안하다고 알렸다.
1618년 10월 10일 | 光海10 | 戊午
선사에 배알했다. 『주서(朱書)』를 읽었다.
1618년 12월 1일 | 光海10 | 戊午 | 밤에 비가 오다.
역병 때문에 삭참례(朔參禮)를 행하지 않았다. 『예기(禮記)』를 읽었다.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와 <인명>배경홍(裵景鴻)인명>, <인명>서진룡(徐震龍)인명>이 보러 왔다.
1618년 10월 19일 | 光海10 | 戊午
1618년 12월 5일 | 光海10 | 戊午
고통스럽다.
1619년 2월 9일 | 光海11 | 己未
선사에 배알하였다. 예기를 읽었다. <인명>손문순(孫文順)인명> 묵었다. <인명>정기(鄭錡)[정보(精甫)]인명>가 보러 와서 이야기를 전하길 "<인명>정경임(鄭景任)인명> 성주가 「척사부정통문(斥邪扶正通文)」을 매우 칭찬하였다."고 했다. 정 성주(鄭
1618년 11월 1일 | 光海10 | 戊午
선사에 배알했다. 삭참례(朔參禮)를 정지하였다.【역병이 옆 마을에서 치성하였기 때문이다.】 <인명>정영보(鄭寧甫)인명>가 아침에 왔다가 밥을 먹고 갔다.
1619년 6월 27일 | 光海11 | 己未
선사에 배알했다. 종숙(從叔)의 편지를 받았다.
1617년 10월 27일 | 光海9 | 丁巳
선사에 배알했다. 증왕부모와 부모님의 묘소에서 상순사(上旬事)를 지냈다. 제독 종숙(提督從叔)씨가 와서 참석했다. 배소(拜掃)에 제수도 갖추지 못하고 제때 하지도 못했으니 가난한 사정에 마음이 아팠다. 이때 부역(賦役)이 번거롭고 무거워 백성들이 살 요량이 없었다.
1617년 9월 4일 | 光海9 | 丁巳
선사(先祠)에 배알했다. 식후에 문득 들으니 선생께서 이미 반야(半野) 촌을 지나, 소유정(小有亭)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하여 문후하려고 정자로 달려갔다. 순사(巡使) <인명>윤휘(尹暉)인명>가 먼저 정자에 기다리고 있었다. 오가는 군현의 선비들과 맞이하는 종자들이
1618년 8월 23일 | 光海10 | 戊午
선사(先祠)에 배알하였다.
1618년 10월 3일 | 光海10 | 戊午
선사에 배알했다. 몸이 좋지 않았다.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가 저녁에 와서 머무르며 이야기를 하였다.
1618년 10월 11일 | 光海10 | 戊午
선사에 배알했다. 묘사를 의례대로 행했다.
1619년 2월 6일 | 光海11 | 己未
선사에 배알하였다. 예기를 읽었다. 일기를 편수하였다.
1618년 10월 20일 | 光海10 | 戊午
선사에 배알했다. 사람을 보내 <지명>인동(仁同)지명>의 외가 묘사를 준비하게 하였다. <인명>희로(希魯)[손처약(孫處約)]인명>가 갔다.
1618년 12월 12일 | 光海10 | 戊午
<인명>잠(潛)[손잠(孫潛)]인명> 또한 수포가 올라왔다.
1619년 2월 10일 | 光海11 | 己未
선사에 배알하였다. 예기를 읽었다. <인명>손문순(孫文順)인명>이 떠났다.
1618년 11월 2일 | 光海10 | 戊午
몸이 좋지 않았다. <인명>배상지(裵尙智)인명>가 와서 『소학(小學)』에 대해 물었다.
1619년 6월 28일 | 光海11 | 己未
선사에 배알했다. <인명>서건보(徐建甫)인명>가 술을 가지고 보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