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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7월 13일
| 純祖2
| 壬戌
| 식후에 비가 내리다가 곧 개다.
새벽에 일어나서 여러 부형들을 모시고 증영의정 부군(贈領議政府君)의 제사에 참석하였다. 모인 자가 팔십여 명이었는데 당(堂) 위에 있는 자는 노인이 서고, 당 아래에 있는 자는 소년들이 섰다. 집안에 늘어선 자손들을 둘러보신다면, 어찌 즐겁지 아니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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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7월 21일
| 純祖2
| 壬戌
새벽에 일어나 금곡 조(金谷祖)와 함께 졸재(拙齋) 기제사에 참석하다. 【나에게 증외외가(曾外外家) 6대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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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7월 30일
| 純祖2
| 壬戌
| 맑다. 낮에 약간의 빗방울이 떨어지다.
【30일 아침에 흐리고 가랑비가 오다.】 종조비(從祖妣) 상사(祥事)에 참석했는데 외지손님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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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8월 8일
| 純祖2
| 壬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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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5월 12일
| 純祖2
| 壬戌
| 맑다.
빙조(聘祖)가 <지명>황전(黃田)지명>에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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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3월 11일
| 正祖24
| 庚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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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3월 19일
| 正祖24
| 庚申
| 맑다.
미동 대부(美洞大父)가 대부(大父)에게 아뢰기를 "지난 번 화천(花川) 모임에 갔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모두 이건(移建)하고자 하는데, 우리 마을을 염두에 두고 있어서, 매우 불편하였습니다. 어제 이 뜻을 도정 숙(都正叔)에게 말했더니, 도정 숙의 생각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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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3월 27일
| 正祖24
| 庚申
| 구름 끼고 흐리다.
우리 고을 수령이 진영(鎭營)의 사람들과 함께 뱃놀이를 하며 내려가는데, 도 손(道孫)이 밖에서 달려와 말하기를, "내가 빨리 읽으려고 합니다."라고 하여 가서보니 독(讀)이 막 마쳤다. 대부가 불러서 다른 글을 읽게 했는데, 문득 나발소리가 들리고 점점 강기슭에 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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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7월 18일
| 純祖2
| 壬戌
| 맑다.
병산서원의 순제(巡題)를 지었다. 수찬 숙(修撰叔)이 시험지를 고평할 때에 반드시 나의 부(賦)를 먼저 검토하였다. 곳곳에 고칠 곳을…… 한 통을 다시 나에게 보이라고 하니 그 뜻이 참으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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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7월 26일
| 純祖2
| 壬戌
새벽에 오대조비(五代祖妣)의 제사에 참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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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8월 5일
| 純祖2
| 壬戌
| 맑다.
새로 나온 순제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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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8월 13일
| 純祖2
| 壬戌
| 아침에 비가 많이 오고 식후에 그치다. 밤에 달빛이 밝다.
김 척숙(金戚叔)을 찾아뵙고 또 <인명>도영원(都永元)인명> 형(兄)을 찾아뵙다. 금곡 조(金谷祖)를 찾아가 고평한 글의 대강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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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5월 7일
| 純祖2
| 壬戌
| 맑다.
아침에 <지명>법흥(法興)지명>의 이(李)와 안곡 숙(安谷叔)을 봤다. 처가에서 아침을 먹었으며, 식사 후 <지명>안곡(安谷)지명>으로 향했다. 나는 <지명>송하(松下)지명>에서 작별인사를 했다. 숙주(叔主)가 이르길, "네가 이곳에 오니, 아이와 어른이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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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3월 16일
| 正祖24
| 庚申
| 맑다가 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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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3월 24일
| 正祖24
| 庚申
| 반은 흐리고 반은 맑다.
점심 때 빙계서원(氷溪書院)의 종이 와서 회문(回文)을 바쳤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정에서 사액을 내리는 명이 이미 이르렀으니, 장차 돈을 거두어 서원을 단장해야 합니다. 삼가 여러분들이 많이 오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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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4월 2일
| 正祖24
| 庚申
| 맑다.
<지명>약목(若木)지명>과 <지명>청송(靑松)지명> 두 곳의 객이 문안을 왔다. <인명>용수(龍壽)인명>가 앓아누웠으니 근심스럽고 근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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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4월 29일
| 正祖24
| 庚申
| 아침에 비가 개고 해가 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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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4월 7일
| 正祖24
| 庚申
| 맑다. 저물녘 큰 바람이 일어나고 큰 비가 내리다.
<인명>계부(季父)[류영조(柳英祚)]인명>【주부 숙(注書叔)이 부여현감(扶餘縣監)이 되다.】가 <지명>병산(屏山)지명>에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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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3월 13일
| 正祖24
| 庚申
|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지다.
강물이 크게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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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3월 21일
| 正祖24
| 庚申
| 맑다.
대부(大父)를 문안하면서 묻기를, "<인명>유향(劉向)인명>의 「논산릉서(論山陵書)」에 ‘비록 <인명>우(禹)인명>․<인명>탕(湯)인명>의 덕이 있어도 말손(末孫)인 <인명>걸(桀)인명>․<인명>주(紂)인명>를 가르칠 수 없다.’라는 말이 있으니,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