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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11월 26일
| 哲宗11
| 庚申
| 춥다.
낙승질(洛升姪)이 낙마(落馬)하여 왼팔이 부러졌으니 차마 볼 수 없었다. 구릿가루와 산골(山骨)을 복용하면 혹 나을 수 있다 하니 빌고 빌 뿐이다. 재산(才山) 사곡족숙(沙谷族叔)이 찾아와서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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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7년 2월 20일
| 憲宗13
| 丁未
| 맑다.
저녁에 한식(寒食) 절향(節享)을 지냈는데, 헌관(獻官)은 승지(承旨) 홍영규(洪永圭)이었고, 찬자(贊者)는 봉사(奉事) 김우현(金佑鉉), 알자(謁者)는 김석(金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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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10월 30일
| 高宗3
| 丙寅
| 맑다.
군위(軍威) 홍사형(洪査兄)이 와서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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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12월 8일
| 高宗3
| 丙寅
| 흐리다.
회아(會兒)가 고복(考卜)을 하러 안동부로 들어왔다. 문경에 사는 친구 김화용성여(金化容聖如)가 찾아와서 유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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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1월 12일
| 高宗4
| 丁卯
| 맑다.
주산제문(主山祭文)을 지었다. 노동(魯東)회석(會席)에 참석하였다. 호동(壺洞) 통문(通文) 때문이다. 면회(面會)를 베풀고 군수(軍需)를 구획하엿다. 결국에는 회원의 영성(零星)으로 구획을 하지 못하고 파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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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12월 5일
| 高宗3
| 丙寅
| 바람불고 춥다.
답장을 써서 법전(法田)하인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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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12월 13일
| 高宗3
| 丙寅
| 아침에 계속 눈이 오다. 낮에 개고 바람이 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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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1월 17일
| 高宗4
| 丁卯
| 맑다.
왕고(王考)의 제삿날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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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 8월 23일
| 憲宗11
| 乙巳
| 맑다.
동관 유면환(兪冕煥)이 식전에 나와서 합번하였다. 주서(注書) 홍(洪)씨의 답신이 왔다. 저녁에 산양(山陽) 숙주(叔主)와 문중의 과행(科行) 5명이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에 찾아와서 유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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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2월 19일
| 憲宗12
| 丙午
| 바람이 불다.
밤이 되어서야 영질(英侄)이 원촌(遠村)에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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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2월 27일
| 憲宗12
| 丙午
| 저녁부터 비가 조금 내리다.
서울 길에 나섰다. 부친의 환후가 나아서 회복되었다고 할 만하지만, 부친 곁을 떠날 수 없는 형세이다. 그러나 진실로 친명(親命)을 어기는 것은 실로 벼슬길을 나서지 않으면 부친이 염려를 하여 병이 더할 염려가 있어서 부득이 길을 떠났다. 낮에 고평(高坪) 중구씨(仲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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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5월 17일
| 憲宗12
| 丙午
| 새벽부터 비가 크게 내리다.
헌종(憲宗)이 비를 무릅쓰고 유릉(綏陵)에 거둥하였다. 저녁에 종제 순형(舜亨)이 올라와서 부친의 편지 두 통을 전해 주었다. 하나는 지난 달 18일에 쓴 것이고, 하나는 이달 10일에 쓴 것이다. 이 편지에 따르면, 부친의 기력이 조금 손상이 되었는데, 대개 종군(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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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9월 12일
| 憲宗12
| 丙午
| 오후에 바람이 불다.
저물녁에 돌아오면서 원당(元塘) 안(安) 지평(持平) 어른을 찾아 뵙다. 상(上)·하촌(下村)에 인사를 다녔다. 금곡(金谷) 구씨(舅氏)가 하상(河上)에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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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12월 5일
| 憲宗12
| 丙午
| 맑다.
동관장(同官丈)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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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12월 13일
| 憲宗12
| 丙午
| 맑다.
동관장의 편지와 이휘보(李彙溥) 형의 편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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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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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壬戌
| 맑음.
대윤이 진장(鎭將)에게 욕을 보았다. 나 역시 끌려 들여감을 면치 못하였으니 종일 분하였다. 책읽기를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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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1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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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壬戌
| 맑음.
새벽에 머리를 빗고 『주역』을 외웠다. 『당시(唐詩)』를 보았다. 밤에는 심기가 무단히 불편하여, 누워서 떨쳐 일어나지를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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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4월 24일
| 哲宗12
| 辛酉
| 잠깐 흐리고 잠깐 개다.
부중(府中)의 하인 편에 주아(周兒)의 17일자 편지를 받고 삼종숙질(三從叔姪)의 객지상황이 모두 편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다행이었으나, 우종(宇從)이 그 날에 응강(應講)한다고는 하나 남은 희망이 없을 것 같으니 분하고 탄식스러웠다. 녹사(錄事)는 이달 내 도권(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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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12월 29일
| 哲宗12
| 辛酉
| 추위가 조금 풀리다.
하남(河南) 종질녀(從姪女)의 신행(新行)이 출발했고, 날씨도 조금 누그러졌으니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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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 8월 20일
| 憲宗11
| 乙巳
| 맑다.
산양(山陽) 숙주(叔主)에게 편지를 썼다. 저녁에 규찬(奎燦) 종(從)의 편지를 받았는데, 이 편지를 통해 어제 1소(所)·2소(所)의 과장이 모두 무탈하게 정권(呈券)하였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