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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년 10월 14일
| 英祖50
| 甲午
| 따뜻하다.
『청천집(聽天集)』를 대교(對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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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년 11월 2일
| 英祖50
| 甲午
| 새벽에 눈이 조금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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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년 11월 20일
| 英祖50
| 甲午
| 날이 봄처럼 따뜻하다.
동지(冬至). 새벽에 절천(節薦)을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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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년 11월 30일
| 英祖50
| 甲午
|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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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8월 18일
| 純祖2
| 壬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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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8월 27일
| 純祖2
| 壬戌
| 구름 끼고 흐리다.
<지명>하상(河上)지명>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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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9월 5일
| 純祖2
| 壬戌
| 맑다가 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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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9월 13일
| 純祖2
| 壬戌
| 맑다.
저녁에 평성 종수(坪城從嫂)가 왔는데 <인명>강윤의(康胤毅)인명> 보(甫)가 모시고 왔다. 밤에 청양 대부(靑陽大父)를 뵙고 돌아왔다. 『논어(論語)』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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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9월 22일
| 純祖2
| 壬戌
| 밤에 비가 흩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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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10월 1일
| 純祖2
| 壬戌
| 맑다.
새벽에 조비(祖妣) 기제사에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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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4월 3일
| 純祖2
| 壬戌
| 맑다.
화장 숙(花庄叔)의 장례에 참석하여, <인명>이병덕(李秉德)인명>, <인명>임태운(林泰運)인명>등의 사람을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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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9월 1일
| 純祖2
| 壬戌
| 맑다.
아침에 『대학연의(大學衍義)』를 보았다. 마을 안의 여러 벗들이 찾아왔다. 인종숙(姻從叔) <인명>재진(在振)인명>이 말하기를, "류 부여(柳扶餘)가 흥양 숙(興陽叔)의 약속을 끊은 것은 보통 사람에게 있어서 마땅한 것이 모두 그러하니 책망하기에 부족하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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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9월 9일
| 純祖2
| 壬戌
닭이 막 울자 모두 손을 씻고 양치하였다. 죽을 각각 한 그릇씩 먹고 각각 맡은 바로 사당에 들어가 행사하였다. 문물이 갖추어져 융성하게 볼만하였다. 제사가 끝이 나자 당중(堂中)에 개좌(開坐)하였다. 찬자(贊者) <인명>김용필(金龍弼)인명> 씨(氏)가 정색하며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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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9월 17일
| 純祖2
| 壬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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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9월 27일
| 純祖2
| 壬戌
| 맑다.
직장(直長) <인명>김종수(金宗壽)인명>를 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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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3월 29일
| 純祖2
| 壬戌
| 아침에 흐리다가 맑다.
「만물이 모두 나에게 구비되어(萬物皆備於我)」, 「그 위아래에 드러남을 말한다(言其上下察也)」, 「기가 이로써 형태를 이루고 리 또한 거기에 부여된다(氣以成形而理亦賦焉).」등의 부를 지어 가서 금곡 조(金谷祖)에게 보여드리니, 금곡 조께서는 칭찬을(허여함을) 아끼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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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4월 8일
| 純祖2
| 壬戌
| 맑다.
<지명>상산(商山)지명> 이좌수(李座首)가 창곡(倉穀)을 없애는 일로 쓴 제음(題音)을 부리(府吏)가 편지로 알려오자, 대부께서 행하지 못하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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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4월 16일
| 純祖2
| 壬戌
| 맑다.
이 원장(李院長)을 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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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4월 24일
| 純祖2
| 壬戌
| 맑다.
밤에 부여 숙(扶餘叔)을 뵈었다. 부여 숙(扶餘叔)이 말하기를, "너의 글이 매우 뛰어하다. 나는 너의 글 조리가 이 정도에 이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하며 잇달아 말하기를, "형님이 계시면 그 즐거움이 어떠했겠는가. 그런데 결국은 목숨을 연장하여 기다리지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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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9월 8일
| 純祖2
| 壬戌
| 조금 맑다.
낮에 진사 대부(進士大父)의 명령으로 상량문(上樑文)을 썼다. 【진사 대부가 나에게 상량문을 쓰라고 시켰는데, 도정 대부(都正大父)가 지은 것이다. 중간의 한 구절에 이르기를, "천공(天公)이 한밤에 어량(魚梁)을 빌려주어서 온 도(道)의 인사들에게 제공하였고, 곤령(